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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이름 없이 피는 꽃

이기희

이기희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시작은 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모른다. 끝은 멈춤이다. 끝이 없다면, 멈추지 않는다면 바퀴는 영원히 돌기를 계속할 것이다. 시작과 출발이 짜릿한 흥분과 분홍빛 쵸콜렛처럼 달콤해도 시작은 언젠가 일상의 고장 난 자전거 바퀴처럼 지쳐 멈추게 마련이다. 영원히 페달을 밟을 수는 없다.
 
생의 어디쯤에서 스스로 자전거 페달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처음 그대가 젖은 목소리로 빛의 속도로 다가왔을 때 가슴에는 첫사랑이 뱀처럼 또아리 틀었다. 모든 걸 잃는다 해도 멈출 수 없었다. 사랑이 달콤하게 속삭이며 귓볼을 간지럽힐 때 작별은 이미 떠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희극이던 비극이던 한편의 연극이 끝난 무대는 황량하고 쓸쓸했다. 바닥에 흩어진 프로그램과 버려진 티켓을 밟으며 칠흙 같은 어둠 속을 빠져 나왔다. 첫사랑이 아픈 건 처음이고 시작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심하게 아프지만 매도 자꾸 맞으면 견디는 힘이 생긴다. 사는 것이 고달파도 이름 없이 피는 한송이 꽃을 위해 죽도록 매달렸다. 미친듯 사랑에 빠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대상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미친듯 무엇인가에 취해 생을 불태울 수 있다면 생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중에서
 
해묵은 바바리 휘날리며 대구 동성로에 꽃바람을 이르키던 김춘수 시인은 당시 여류 시인들에게는 흠모의 대상이였다. 선생님이 드나들던 다방 구석에 몰려 앉아 시인을 애타게 기다렸다. 선생님을 마지막 뵌 것은 결혼 후 한국 방문 때였다.
 
11대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신 선생님 사무실로 갔다. “바쁘실 텐데 잠깐 뵙고 갈게요”했더니 “안 바빠. 이제 날 찿아오는 사람도 없어”하시며 쓸쓸해하셨다.
 
시인은 허무주의에 기반을 둔 인간의 실존과 존재를 꽃보다 더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냈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낙인(?) 찍혀 외로운 삶을 보낸 선생님은 훗날 그 시절을 “처량한 몰골로 외톨이가 되어,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보낸 세월”이라고 회고하셨다.
잘나가는 극작가 한 분이 한 편의 연속극을 쓰기 위해서는 피나는 전쟁을 한다고 말했다. 연속극 12회 분 쓰는 동안 선배는 ‘창작의 고통’과 ‘시청률’ 사이에서 사투를 벌린다. 마지막 회를 탈고한 뒤에는 탈진해서 며칠 동안 식사도 못하고 술만 드시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다. 작가에게 작품은 살아있는 형벌이다.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닌, 끝이 끝이 아닌, 첫사랑이 영원한 작별이 아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작가는 그린다. 예술가에게 창작은 절망이고 희망이다. ‘시작은 반’이 아니고 새로운 출발이다. 산다는 것은 끝나지 않는 시작이다. 그 시작과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울고 불고 매달리고 헤어지기를 거듭한다. 시인은 울며 읊조리고 화가는 명암으로 빛과 어둠을 가르고 악사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코드를 당긴다. 발레리나의 발끝은 피멍이 맺혀있다. 한송이 이름 모를 꽃을 피우기 위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구원을 꿈꾼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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