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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나는 또 증발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새 시, 조금씩/ 나는 너에게 보여 주기 위한// 시// 읽는 사람의 몫이 대부분인/ 가장 무대뽀의 도둑 심뽀의/ 일/ 내가 구운 향기 나는 빵을 먹으며 내// 시// 한 편을/ 읽어 주겠니/ 오늘
 
최재원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그래’라고 답하고 싶은 시다. 최근 읽은 시집 중 단연 좋았다. 인용한 시는 ‘너는 시’의 전문.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지지 않는 것들을/ 격자에 맞추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찢어 떼어 놓는 데 쓰고 있다.” ‘시’라는 제목의 시도 있다. 사실 잘 알 수 없고 언어화되기 힘든 것을 시어로 만들면 읽는 사람이 제각각의 언어로 해석하는 것, 시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2021년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최재원의 시집이다. 34세의 젊은 시인은 물리학과 시각예술, 그림을 전공했고 미술비평가,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비정형의 과감한 상상력은 “소년도 소녀도 아닌/ 오차도 찰나도 아닌/ 이름을 불러 주세요/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안은 여러 개지만 밖은/ 하나예요 이제 같은 길은/ 없어요” (‘백야’)처럼 이분법을 거부하는 젠더퀴어로도 이어진다. 시인은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사랑할 수 있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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