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몸이 되는 말에 대하여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로 시작하는 요한복음은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바이블입니다. 언어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는 귀한 성경이라는 거죠. 저도 늘 이 구절을 강의에서 인용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말씀과 저의 거리는 태초와 지금의 거리만큼 멀었습니다. 하늘나라와 땅만큼이나 멀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였던 셈입니다. 저는 전헌 선생님의 요한복음 강의를 들으면서 남의 이야기였던 요한복음이 제 이야기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태초는 언제인가요? 우리가 알고 있는 태초는 아주 옛날 이 세상이 처음 생겼을 때입니다. 그런데 전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은 단지 그 먼 옛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태초라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이 원래부터 그렇게 생겼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은 지금도 그 말씀이 처음처럼 일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럼 하늘은 어디인가요? 하늘나라는 어디인가요? 저는 하늘나라는 우리가 죽어서나, 그것도 운이 좋으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실제로 하늘나라에 대한 관심은 깊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살아있을 때는 그저 사는 것도 바쁘니까요. 살기도 바쁜데 언제 죽음까지 신경을 쓰냐는 말은 농담 같은 말이지만 사실이기도 할 겁니다. 죽어서의 일이라면 죽을 때 또는 죽어서 생각하면 그만일 겁니다. 그런데 하늘이라는 말은 저 멀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늘이라는 말은 모든 곳이라는 말입니다. 하늘의 의미를 배우고 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주기도문의 시작이 얼마나 귀한 시작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태초의 하늘은 세상이 원래 그렇게 생겼다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때의 말씀은 태초의 진리입니다. 진리라고 하면 말이 무거워 보이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살게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이 놓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기쁩니다. 고통이나 죽음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태초의 말씀이 예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입니다. 기독교만의 말씀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나누고 있는 이야기도 모두 그 말씀 속에 있을 겁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위로가 되고, 행복하면 우리는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그런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말들은 저 멀리에서 나와 상관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내게로 와 몸이 됩니다. 말씀이 몸이 되는 겁니다. 저는 말이 몸이 되기 바랍니다. 또한 몸이 말이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태초의 하늘처럼 살게 되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 전문가가 아닙니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헌 선생님의 책을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선생님께 배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의 말씀을 들은 수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고 기뻐하며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들불처럼 예수의 말씀과 삶이 세상에 퍼져 나갔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설레게 했을까요? 무엇이 그들을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고 기쁘게 하였을까요? 그것은 말씀이 그대로 그들의 몸이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처음에 저는 전헌 선생님께 책의 제목으로 ‘몸이 되는 말’이라고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듣고 큰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게 제 그릇의 크기였을 겁니다. 저는 종종 제 그릇의 크기가 작음을 고마워합니다. 제가 제 그릇의 크기가 작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제 그릇을 알기에 더 배우고 공부합니다. 즐거운 일입니다. 알면 알수록 부끄러워집니다. 하지만 행복한 부끄러움입니다. 숨고 싶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드러내고 싶은 부끄러움입니다. 저는 선생님 말씀을 정리하며 배우는 게 많아서 진정으로 행복하였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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