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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불멍과 등산화

 늦가을, 산 정상에서 바비큐를 했다. 등산로에서 좀 떨어진 아늑한 넓적바위 위 둥그런 돌 화덕에, 나뭇가지를 주워다 불을 피웠다. 거기다 통 오징어와 직접 기른 더덕을 구워 라면하고 산에서 먹는 맛이란! 마무리로 믹스커피 한 잔에 두 발을 불가에 올려놓고, 세상 우아한 자세로 불멍을 즐기니,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었다. 한참 후 내려오려는데, 앗, 왼쪽 신발이 이상하다. 거죽이 흐물흐물하다. 불멍에 정신이 나가 신발 녹는 줄도 모른 이 미련 곰탱이! 가볍고 편해 큰맘 먹고 장만한 169불짜리 등산화의 슬픈 전설이여!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멀어져라, Step away from your campfire, (그래야 등산화가 타지 않는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Shifting Sands)에 나오는 다섯째 방법이다. 저자 도나휴와 친구 탤리스는 돈을 아끼려 오아시스 밖에서 캠핑한다. 그때, 전에 소금을 달라며 찾아왔던 투아렉 유목민이 다시 나타나 함께 가자고 한다.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할 수 없이 따라간다. 안락한 캠프파이어를 떠나 칠흑 같은 사막을 별빛에 의지해 도착해 보니, 사슴 고기 바비큐가 한창이다. 잔치에 초대받은 것이다. 맛있는 고기에 차까지 마시고, 불어 하는 사람 통역으로 눈물이 나도록 웃고 놀면서, 경계 대상이었던 그들과 가까워지는 새로운 체험을 한다.  
 
불멍이 대세다. 누구도 따뜻한 캠프파이어를 떠나기 싫다. 지금껏 살아오며 통했던 세계관, 가치관과 습관들, 든든한 가족과 친구들, 익숙한 직장과 집, 평온한 일상 등이 떠나기 싫은 우리 캠프파이어들이다. 그 곁에 안주하는 것은 편안하고 친숙하다. 그래서 변화나 위기를 만날 때, 우리는 이 불을 더 크게 만들려고 나뭇가지를 주우러 다닌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그러다 보면 캠프파이어가 비춰주는 곳이 어두운 밤의 극히 일부분일 뿐임을 잊게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른 세상도 있다. 한 걸음 멀어져 보면 보인다.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은 아마 모르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Fear of the Unknown)일 것이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발생하는 적응 장애(adjustment disorder)는, 그래서 정신 건강에서 가장 흔한 진단명 중 하나다. 그런데 가족을 잃거나 이혼, 실직, 질병, 요즘의 팬데믹 같은 힘든 상황에 적응하는 것뿐 아니라, 결혼, 취업, 임신, 은퇴, 이사 같이 설레는 상황조차도 왠지 우리를 두렵게 한다. 본성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할 새로운 상황은 무엇이든지 두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감하게 캠프파이어를 떠났을 때 만나게 된 사막 유목민들과의 축제는, 저자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밤으로 기억되었다.  
 
넷플릭스의 Midnight Asia 1화에 나오는, 도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수미코이와무로씨, 8년 전부터는 밤에 디제이로도 일한다. 86세 그녀는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고령 프로 클럽 디제이다. 반짝이 재킷과선글라스, 모자를 쓰고 테크노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시는 이 할머니, 캠프파이어에서 걸어 나올 수 있으셨던 분!
 
검은 호랑이해가 밝았다. 올해는 호기 있게, 우리를 안주케 하는 캠프파이어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 새로운 곳, 새로운 인간관계를 경험해 보자. 불 옆에서는 잘 안 보이던 그 찬란한 별빛이, 우리 가슴으로 마구마구  쏟아져 들어오지 누가 알겠는가. 캠프파이어에 오래 붙어있으면 등산화만 태울 뿐이다.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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