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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가만히 있자

산짐승은 몸에 병이 들면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다/ 숲이 내려보내는 바람 소리에 귀를 세우고/ 제 혀로 상처를 핥으며/ 아픈 시간이 몸을 지나가길 기다린다// 나도 가만히 있자
 
- 도종환 시인의 ‘병든 짐승’ 전문
 
 
 
꽤 오래전에 나온 시인데 읽다 보니 우리가 겪고 있는 이즈음의 상황과 겹쳐진다. 우리는 모두 돌기가 원활치 않은 바퀴에 끼인 것처럼 불편을 겪고 있다. 
 
현대인들은 갖가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강박감 아니냐고 하듯이 일상이라는 사소함에도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더군다나 코로나라는 이겨내기가 어려운 상대를 만나고 보니 나 남 할 것 없이 병 아닌 병을 얻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여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두 군데 고장 난 곳 없는 사람이 별로 없다. 마음의 허약함을 호소하곤 한다. 삶이 다양하듯이 겪고 있는 병적 징후들도 다양하다.  
 
“나도 가만히 있자”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은 조용한 절규 같기도 하다. 가만히 있는 것이 최상의 대책이라는 듯,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듯, 코로나 앞에서 낮은 포복으로 숨을 죽이고 있는 이즈음의 우리들이 이렇지 않은가.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 ‘절규’는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역동적인 곡선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작가 생전에 붙인 제목은 ‘자연의 절규’라고 한다. “어느 날 저녁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한쪽에는 마을이 있고 아래쪽에는 피오르드가 있었다. 나는 피곤하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 (···) 해가 지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자연을 뚫고 나오는 절규를 느꼈다. 실제로 그 절규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진짜 피 같은 구름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다. 색채들이 비명을 질러댔다”라는 화가의 글은 매우 유명하다.
 
자연의 절규가 들리고 색채들이 지르는 비명을 들을 수 있는 심리상태란 어떤 것이었을까. 자연의 절규가 들린다는 건 아마도 심리상의 이상 증상일 것이다. 불안감에 시달렸다는 화가의 성장배경이나 미술사적인 해석은 젖혀두고 단지 자연이 내는 신음을 감지한다는 것에만 주목하고 싶다.
 
무심코 밟고 지나던 풀들도, 쇄골을 드러내고 있는 겨울나무도, 추위를 피해 웅크리고 있을 짐승들도 제 삶의 격랑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극한의 피로감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들의 생존을 위한 발버둥은 그게 무엇이든 절박하고 진지하다. 사람인 우리에게만 수시로 복병이 나타나는 건 아닐 터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난감한 현실은 진즉에 자연의 절규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사람의 편리에만 집중한 탓이라는 것은 이미 공감대가 넓어졌다. 병은 무슨 병이 든 지 전조증상이 있기 마련이다.  
 
봄이 오면 땅을 밀고 올라오는 새싹들처럼 스스로 체온이 오르는 때가 올 때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환호할 것이고 바람은 출렁일 것이다.  
 
다만 회색 하늘에 무지갯빛의 플래카드를 걸어놓는 기지가 필요하다. 빨리 낫기를 바라며 아등바등하는 일도 허망하다. 어차피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치유의 능력이 생길 때까지 자연의 한숨 소리를 듣고 자연이 건네는 메시지를 해독하는 신경증을 겪으며 서두르지 말고 가만히 있자.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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