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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떠나갈 날을 준비하는 삶

 지난 연말의 일이다. 책상을 정리하던 아내가 수년 전 사두었던 묘지 계약서가 들어있는 폴더를 발견했다. 안에 보니 명함도 있다. 생각난 김에 전화를 했다. 마침 장례보험의 무이자 할부판매가 곧 끝이 난다며 올해가 지나기 전에 오라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처음 겪는 일이라 난감했다. 하지만 이미 장지와 장례보험이 마련되어 있어, 전화를 하니 곧 사람이 와서 정중히 모시고 갔다.  
 
상을 당했지만 아들인 내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앨범을 꺼내 사진을 골라 장례식에 쓸 슬라이드를 만들고, 성당에 연락해 연도와 장례미사를 준비하는 정도가 내게 주어진 일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을 미리 준비하는 일의 필요성을 크게 깨닫게 되었다. 얼마 후, 동생네와 함께 나란히 장지를 4개 준비했다. 여자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남자들이 바깥쪽에 눕고, 아내들은 안쪽에 눕히자는 농담도 했다. 기회가 되면 장례보험도 사두어야지 하고는 사는 일에 치여 잊고 지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형제들은 다소 소원해진다. 딱히 사이가 나빠서도 아니요,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자식들이 커져, 그들도 가정을 이루다 보니 가지치기를 하는 셈이다.  
 


우리도 명절에 모이는 일은 이제 각 가정 단위로 갈라서 한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형제들의 생일에 모이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코로나 탓에 2년째 중단 상태다.  
 
부모를 잃는 일은 나이와 상관없이 매우 슬프고 허망한 일이다. 이때 장례비용까지 걱정해야 하면 어려움은 더 커진다. 돈의 많고 적음의 문제만은 아니다. 형제가 여럿이다 보면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형은 화장을 하자고 할 수도 있고, 동생은 묘지를 쓰자고 할 수도 있다. 장례식 절차, 관과 꽃을 비롯해 필요한 물품들도 질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형제가 모두 뜻을 하나로 모으고 비용도 공평하게 나누면 좋겠지만 사는 형편이 다르면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혹시 얼마간 남은 유산을 두고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얼마 안 되는 액수의 돈을 두고 사이가 나빠진 삼 형제가 있다. 막내가 셋으로 나누자고 하니, 둘째가 반발했다. 부모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형의 집수리 비용을 도와주었으니 형은 그 부분을 제하고 받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형의 입장에서는 동생의 태도가 매우 괘씸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 후, 형제들의 사이가 서먹해졌다. 부모는 자신이 사라진 후에도 남은 자식들이 사이좋게 왕래하고 도우며 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후에 문제가 될만한 일들을 미리 제거해 놓아야 한다.
 
그 해결책 하나가 장례와 관련된 일이며, 둘은 유언장 작성이다. 유언장을 작성해서 내가 원하는 장례절차를 밝혀 놓고, 얼마 안 되는 액수라도 남은 재산에 대한 분할방법을 명시해 놓으면, 혹 불만이 있는 자식이 있더라도 죽은 부모를 원망할지언정 결에 있는 형제와 다툼은 없을 것이다.  
 
지난 12월 말, 장지를 찾아가 장례보험을 구입했다. 무이자지만 5년을 갚아야 한다. 다 갚기 전에 눈감는 일은 없도록 건강히 살지어다.

고동운 / 전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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