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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토닥토닥

 바람 소리 무서운 겨울. 잠 안 오는 밤이면 어머니는 손끝으로 “자장! 자장!” 하시면서 내 가슴을 두드리셨다. 분명히 “토닥토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꿈결처럼 어릴 적 추억의 여운이 남아 있다. 새해가 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지키지도 못할 결심인지라 무심한 듯 새해를 맞이했지만 가슴한구석에 조금의 설렘은 담아 두었다. 그런 두근거림도 이달이 지나면 사라지겠지?  
 
지난 세월, 참 많은 아픔과 고통 속에서 지냈다. 사람들과 소통이 단절된 외로움은 생각보다 슬픈 일이었다. 누구를 많이 만나도 대화가 잘 안 되기는 마찬가지지만, 아예 아무도 만나지 못하니 힘겨웠다. 동네 주변을 자주 걷던 일도 소홀히 하게 되었다. 요즘은 산책하러 나가려면 발목이 아파서 걷는 것이 힘들다. 소염제도 복용하고 연고도 발라 붕대로 감아놓으니 견딜 만 하다.
 
통증은 나를 겸손하게 한다. 고통은 신이 우리와 가까워지려는 조짐이라고 했다. 다행이지 않은가? 얕은 생각을 조금의 지체도 없이 말로 옮겨서 남들을 아프게 했던 순간들이 어디 한 번 두 번이랴. 말은 날 선 칼과 같다. 과일 깎을 때나 요리할 때만 칼을 쥐고 있어야지, 종일 들고 있으면 정신 건강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이렇듯 말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교만해질 때마다 찾아오는 고통은 감사히 받아들일 일이다. 그래야지만 사람 노릇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민 생활 힘들고 고달픈 것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내 어려움이 가장 절실하고, 내 아픔이 제일 처절하고, 내 외로움이 가장 지독하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는 술을 마시며 하소연하는 나에게 아는 형님이 말했다. “이 세상에 아무런 문제 없는 집안이 어디 있어?” 그날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깨달았다. 세상 모든 것에 부정적인 생각으로 대하던 비관적인 태도가 서서히 바뀌었다. 극과 극은 통하게 되어 있다.  
 


내가 바닥을 쳤다 생각하는 순간 희망이란 것이 생겼다. 지하실로 내려가다 보면 마지막 계단을 만나게 된다. 더는 내려갈 곳이 없으니 올라갈 일만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 나를 전율하게 했다. 그 이후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픔이 다가오면 내가 신을 멀리해서 그런 것이리라 믿는다. 일이 꼬이거나 잘 풀리지 않으면 아직 바닥은 아니라고 위안으로 삼는다. 설상 바닥을 쳐도 다시 올라갈 일만 남았다 하면 속 편하다.  
 
햇살은 겨울의 어두움을 밀쳐내며 내게 다가온다. 내게는 우울증 예방에 필수라는 비타민 D가 피부에 형성되는 효과보다 더 크다. 가슴 뭉클해지는 위로를 받는다. 동백나무 앙상한 가지마다 작은 꽃망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봄을 가슴에 품고 기다린다. 엊그제 포근한 날씨에 개나리도 피었다. 매년 겨울에 날만 조금 따스하면 벚꽃을 피우는 바보 같은 나무가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벚꽃을 피웠으니 어이가 없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더 크다.  
 
어제는 피곤해 낮부터 누워 있는데 아내가 손을 모아 내 가슴을 다독인다. “토닥토닥” 소리가 들린다.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닌데도 들린다. 잠이 쏟아진다. 엄마가 되어본 모든 여성은 다 할 줄 아는 손짓이다. 햇살은 땅을 다독거리며 봄이 저 멀리부터 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토닥토닥.”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이제 희망을 가질 때가 되었다.

고성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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