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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범띠에 생각나는 일들

호랑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곶감이었다.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누나들에게서 들은 우화 속에 나온 동화다. 호랑이가 어린애를 물어가려고 어느 집 문 앞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우는 아기를 달래던 엄마가 곶감을 주며 ‘옜다 곶감이다’ 하니 울음을 뚝 그친 것을 보고 호랑이는 곶감이 자기보다 더 무서운 놈인 줄 알고 줄행랑쳤다는 그 설화가 호랑이해가 돌아오니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 시절엔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가는 호환이 흔히 있었나 보다. 오래전 고인이 되신 나의 어머님이 욕을 하실 때 제일 큰 욕이 ‘호랑이가 물어갈 놈’ 이었다. 우는 아기 달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울면 순사가 잡아간다는 말로 울음을 뚝 그치게 하였다. 일제 말기에 시골 주재소의 순사는 큰 일본도를 허리에 차고 거들먹거리며 걷는 모습이 조선인들에게는 호랑이만큼이나 무서운 존재였다.
 
양력을 쓰기 전에는 육십갑자 간지를 사용하여 연도를 표시하였고 자기가 태어난 해의 상징을 자기 띠로 정하여 결혼 상대와 궁합을 맞추기도 하였다. 서양에서도 별자리로 자기 탄생의 날짜를 정하여 운세를 점치기도 한다. 미래를 궁금히 여기는 심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다. 지금은 컴퓨터에 검색하면 한 해 운세를 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구정 초에 토정비결이라는 책자를 들고 새해의 길흉화복을 점치기도 하였다. 집안에 우환이 자주 오면 어머님은 장님 무당을 불러다 곧장 굿판을 벌였다. 그는 물을 가득 채운 커다란 옹기 대야에 바가지를 엎어 띄우고 나무 주걱으로 바가지를 두드리면서 주문을 외웠다. ‘북방 북방 조왕신, 나무 북방 조왕신…’ 온갖 잡신을 다 불러놓고 그들을 달래고 소원을 빌었다.  
 
이런 민속신앙도 6·25 사변이라는 국란이 전통풍속의 전환점이 되었다. 교회를 통하여 해외에서 들어온 구호물자는 우리의 복식문화를 서구화하였다. 흰 바지저고리, 흰 두루마기, 검정치마는 양복과 양장으로 바뀌었고 시골 마을까지 기독교회가 세워져 주술적 민속신앙은 차차 자취를 감추었다. 6·25 전쟁사를 검색하면 백의민족의 피난 행렬을 엿볼 수 있다.
 


올해 호랑이해의 설화나 민화가 우리의 마음을 동심으로 몰고 간다. 유년 시절 시골 산골에서는 백여우가 둔갑하여 어여쁜 여인으로 나타나 남성들을 홀린다는 등골이 오싹한 옛날이야기를 듣고 밤에는 측간 가는 길도 무서운 시절이 있었다.  
 
일제 말기 ‘남선제약사’를 창업하여 수작업으로 제약업을 하시며 한의원을 겸하시던 백부님과 선친의 대청에는 백발의 신선이 호랑이를 타고 가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호환을 가져온 맹수지만 민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영물이며 호피를 깔고 앉으면 권위나 부의 상징이었고 호랑이 뼈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졌다. 한때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호랑이 연고가 인기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물불을 가리지 않던 사춘기 시절 두 살 연상인 호랑이띠 아가씨를 겁도 없이 짝사랑했던 고등학교 시절도 있었다.  
 
세월이 갈수록 변이 바이러스가 연속 발견되지만,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기 전 선사시대에도 현재 우리가 고통받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였었는지도 모른다. 올해의 검은 호랑이가 코로나바이러스를 물고 가서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윤봉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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