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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불과 4도 차이인데

아침이 밝아온다. 희뿌연 아침에 차를 몰고 다운타운을 지나간다. 나는 수영장으로 향한다. Y에는 올림픽 사이즈 수영장이 두 개 있다. 간밤에 책 정리를 하느라 잠을 설쳤는지 몽롱하다. 라커룸을 통해 풀로 들어가는데,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 남자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This pool is so chilly, only 78 degrees.” 으스스한 새벽에 서늘한 물이라니. 나는 다른 풀로 향한다. 빨간 구명 보우드를 옆에 낀 라이프 가드에게 물 온도를 물었더니, 82도라고 답한다.  
 
나는 따뜻한 물에서 온천처럼 떠다닌다. 옆 레인의 배불뚝이 영감은 모자를 쓰고 물속에서 걷고 있다. 한 할머니가 워커를 끌고 와서, 조심조심 물에 들어온다. 물에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몸이 성치 않다. 몸이 성치 않으면, 마음도 가라앉는데. 물은 추락한 마음을 수면 위로 다시 올려주는 것일까.  
 
나는 78도의 찬 수영장이 싫지만, 선택이 없는 날도 많다. 82도 수영장은 노인들 아쿠아틱스, 아이들 수영 레슨으로 닫혀있을 때가 많다. 나는 찬물에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타일 턱에 앉아 있다. 커다란 유리문 건너에 김이 서려 있는 따뜻한 수영장을 쳐다본다. 78도와 82도, 불과 4도 차이인데, 체감은 무척 다르다. 수영에는 찬물이 더 좋다고 한다. 찬물에는 산소 분자가 더 많이 있어서 물결이 촘촘하다고 한다. 촘촘한 물결을 뚫으려면, 팔다리를 세게 움직여야 한다. 힘을 받은 피는 온몸을 헤집다가 뇌까지 올라간다. 머릿속에 대청소가 시작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랩을 돈다.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82도는 따뜻한 사람, 78도는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다. 따뜻한 물을 좋아하듯이, 나는 따뜻한 사람을 좋아한다. 누가 온화해 보이면, 쉽게 그의 풀에 뛰어들어 첨벙거리며 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것이 착각임을 알게 된다. 그의 심해로 갈수록 찬물이 감지된다. 누구나 있는 속마음, 본연의 모습 같은 것. 뚫기 힘든 촘촘한 물, 나는 서늘함에 놀라서 헤엄쳐 달아난다.  
 
어젯밤, 새해를 맞으며, 책꽂이를 정리했다. 어지러운 방 한 켠 때문에 늘 개운치 않았다. 사람만 속을 숨기는 게 아니다. 책은 더 고집스럽다. 끝장까지 가도, 무슨 의미인지 알쏭달쏭하다. 책 탓을 하면서, 책을 닫는 내 모습은 찬물에서 도망가는 모습 그대로다.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간다. 책 중간 턱을 넘어갈 때쯤이면, 책과 나 사이에는 관계가 형성된다.  
 
나의 체감 온도와 다르다고 도망치면 모두에게서 도망갈 판이다. 물도 사람도 책도 4도에서 왔다 갔다 한다. 뜨거운 물, 찬물 다 거치고, 바닥을 친 후에, 표면으로 다시 떠오르는 관계,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정월 겨울, 수영 중에, 수면 위로 떠오른 생각, 그 생각은 어찌나 힘이 센지 공처럼 마냥 튀어 오른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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