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비교의식
목사님의 설교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어떤 젊은 여인이 결혼하여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여 작은 집을 샀습니다. 셋집으로 전세로 전전하다 내 집을 샀으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집 자랑을 좀 하려고 동창회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려고 기회를 보는데 동창들이 자랑하는데 강남의 몇십억짜리 집을 사고 시아버지가 집을 사주었는데 몇십억짜리였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자랑하려다가 기죽어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와서 보니 어제까지도 아담하고 깨끗하고 좋던 집이 그렇게 우중충할 수가 없습니다. 아까까지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집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더라는 말입니다. 행복했던 기분이 불행으로 곤두박질을 쳤습니다. 왜일까요. 비교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에 최고라고 합니다. 그리고 행복지수는 마지막에서 3번째라고 합니다. 한국은 발전된 나라이고 잘사는 나라입니다. 세계 최고라는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가서 친구들의 집을 방문해 보면 마치 빈민촌에서 살다가 온 것처럼 기가 죽습니다. 강남에 90평짜리 아파트에 장식도 화려합니다. 그리고 가정부가 차를 내오고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조용한 목소리로 알려줍니다. 저는 일생에 가정부를 두고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고 할 말이 없습니다. 오하이오 집은 시골집이라 무척 컸습니다. 그런 집을 청소부 없이 일생 그 무거운 청소기를 끌고 아내가 청소했습니다. 친구의 집 벽에는 유럽 여행할 때 찍은 사진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입에서는 불평이 떠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어린애는 3살 때부터 경쟁합니다. 유치원에서도 일등을 해야 하고 초등학교에서도 일등을 해야 합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일 이등을 못하면 서울대에 못 들어가고 서울대에 못 들어가면 비교의식 때문에 일생 불행합니다. 저도 젊어서 경쟁의식이 강했습니다. 한국에서 전공의를 하고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남에게 칭찬을 좀 받으니 일등이 되어야겠다고 기를 쓰고 일하고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와서 어렵다는 성형외과를 했습니다. 나는 인생의 정점을 찍은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오하이오의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가장 바쁜 의사로 Best Surgeon으로 추천되었습니다. ‘정말 잘났어’ 였습니다.
그런데 성형외과 미팅에 오면 불행해지곤 합니다. 시작하는 날과 끝나는 날 파티에 나가 보면 전국에서 모인 성형외과 의사들이 턱시도를 입고 모이는데 키가 작은 동양인이 입은 턱시도가 어울리지 않는지 별로 상대를 해주지 않습니다. 인사를 하고 몇 마디를 하고서는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우리를 잘 끼워주지 않습니다. 파티가 끝나고 방에 돌아와 거울을 보면 나의 작은 모습이 끝없이 초라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 비교의식은 결국 자신의 문제라고 합니다. 내 집이 남의 집보다 작아도 우리 집안에 행복이 차 있으면 휘영청 한 남의 집이 부럽지 않고 내 안에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키만 크고 내용이 없는 다른 사람에게 기가 죽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우리는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설교를 마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비교의식을 가지고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라고 생각해 볼 수 없을까요.
이용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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