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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그리움으로 빚는 만두

 새해 첫날,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향했다. 올해는 만두피를 직접 만들 작정이다. 밀가루를 주먹으로 치대 반죽을 하고 젖은 헝겊을 덮어두었다. 전날에 미리 당면을 삶아 다지고, 속을 털어낸 김치도 잘게 썰어 베보자기에 짜서 물기를 빼놓았었다. 물기 뺀 두부와 숙주나물 다진 것, 간 돼지고기를 섞다보니 만두소가 커다란 그릇에 하나 가득이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만드나? 괜히 시작했나? 시작하기 전에 생각이 오락가락이다.
 
해마다 새해맞이 음식은 나 혼자서 기름내를 맡아가며 산처럼 녹두전을 쌓아놓고 냉동실에 빚은 만두를 얼렸다. 미국이니 한국처럼 명절 기분을 낼 필요는 없는 일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고생한다고 투덜대도 그 투정을 해도 받아줄 사람이 없는 이곳은 LA가 아니던가.
 
녹두빈대떡을 안 부친다고 눈치 줄 사람도 없는 일이고 정 먹고 싶으면 간편하게 한국마켓에서 파는 만두를 사다 끓이면 되는 일이다. 연말이라고 밤늦도록 친구들과 쏘다니며 들떠있는 딸들더러 ‘만두 좀 같이 빚자’고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부탁이 통할 리 만무다. 결혼을 해서 분가를 한 딸들이 자발적으로 손을 보태면 좋겠지만 지금도 두 딸네가 모두 각자 바쁘다.
 
‘내가 만든 만두는 맛이 없으니 그냥 사 먹자’는 남편이 야속해도 나 혼자 나무 도마에 반죽한 밀가루를 떼어 밀대로 밀어 동그랗게 만들었다. 먼저 만두 한 개를 만들어 끓인 물에 익혀서 간을 봤다. 입안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김치와 댕글댕글한 당면이 왠지 겉도는 느낌이 났다. 뭐가 문제지? 재료는 똑같은데 왜 예전 맛이 나질 않는 걸까?
 
외할머니 생전에 친척들이 모이면 남자여자 할 것 없이 상에 둘러 앉아 만두를 빚었다. 나이 어린 나까지 고사리손을 보태니 양푼에 가득했던 만두소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다. 설설 끓는 곰국 국물에 썬 가래떡과 만두를 넣어 한소끔 끓인 만둣국에 양념장에 버무린 소고기 고명은 씹을수록 단맛이 났다. 초간장에 찍어 먹던 만둣국은 추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모양이다.
 
뿐만인가. 설날 전에는 너나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만두를 빚었다. 맛 좀 보라며 앞집에서 만두를 갖고 오면 엄마도 만두를 챙겨 내게 이집 저집 배달을 시켰다. 만두를 돌리는 심부름 또한 나눠주는 기쁨이고 재미였다. 손맛에 따라 김장김치 맛이 다르듯이 만두 맛도 그러했다. 고기소를 많이 넣은 외할머니의 만두 맛은 든든한 맛이 났다. 엄마가 만들었던 우리 집 만두는 김치소를 많이 넣어 입안에서 사각거리는 식감이 느껴졌다. 솜씨가 있든 없든 온 집안 식구들이 달라붙어 만들었던 만두는 마켓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그리움이고 추억이다. 내가 만든 만두는 맛이 없다는 남편은 아마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쉬엄쉬엄 만두를 다 빚었다. 눈대중으로 치댄 밀가루 반죽도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았다. 녹두전과 얼린 만두를 배달할 일만 남았다. 딸네로 향했다. 운전하는 동안 만두가 녹아 달라붙을까 얼음 팩도 넣었다. 내가 만든 만두는 사랑으로 빚어서 혼자 만들어도 힘들지 않다.

권소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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