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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84세의 마라토너

 우리 마라톤 클럽 회원 중에는 84세 고령의 자랑스러운 회원이 있다. 금년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전화 통화를 했다. 롱비치 마라톤 경기는 무릎이 감당 못할 것 같으니 취소함이 어떠냐고, 의사로서의 조심스러운 권고와 안부 전화였다.  
 
그러나 그의 참가 의지는 확고했다. 쉬지 않고, 일생을 멈추지 않는 기관차처럼 달려 온 그에게 달리기는 삶의 전부였다. 길만 있으면 달리려는 충동을 느끼는 그런 삶을 살아 온 회원이다.  
 
그와 같이 산행 중 대화를 나누며 느낀 인상은 강인한 의지와 도전의식이었다. 20대부터 심하게 쓴 무릎 연골은 다 마모되어 없어졌다. 더 이상의 달리기에 무릎이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 그를 지켜본 의사로서의 소견이다. 무릎 연골은 혈액 공급이나 신경조직이 없어 회생이나 재생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일정기간만 사용가능한 조직이다  
 
그는 이번 경기 도중 결승선을 앞에 두고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었던 동료의 부축에 힘입어 완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언뜻 프로야구선수 안드레 도슨이 머리에 떠올랐다. 불굴의 투지로 몸을 불사르며 눈부신 경기를 보여준 선수다. 최고의 외야수와 공격수로서의 기량을 팬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정신력을 못 쫓아가는 체력, 잇따른 무릎 부상 속에서도 칠전팔기 아니, 10회의 무릎 수술을 받아가면서도 휴식 없는 기관차처럼 힘차게 달렸다. 어쩔 수 없이 은퇴하는 날 구장의 관중들은 우레 같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야구를 사랑하기에 그래서 야구선수도 사랑하게 됐던 많은 팬들도 같이 울었던 날이었다.
 
약 2만피트 고도의 아프리카 눈 덮인 킬리만자로 산봉우리에 얼어 말라붙은 한 마리의 표범 사체를 보았을 때 그 누구도 이 표범이 왜 여기까지 올라 왔으며,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인지 대답을 못했다. 하지만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 표범과도 같은 강렬한 도전의식을 그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소개했다.  
 
마라톤 동우회 회원은 이번 대회에서 정식으로 완주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일생 동안 지켜온 표범 같이 강한 도전의식에 고개가 숙여진다.  
 
마라톤 뿐만 아니라 가는 세월 속에도 늠름하게 삶을 헤쳐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를 다시 산행에서 만나고 싶다. 또한 그가 체력 단련을 위해 항상 가는 햇빛 찬란한 샌타모니카 비치에서도 그를 만나기를 기대한다.  
 
“인간은 죽을지 모르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작가 헤밍웨이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최청원 / 내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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