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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한 해를 보내며

한홍기

한홍기

금년은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별 기억이 없는 해다. 무엇을 한 듯 한데 워낙 생각나지 않는 무미한 것이었는지, 실제 치매를 앓고 있는 중인지 이렇게 건조할 수가 없다. 나이가 먹을 만큼 먹어서 그런가 참 재미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완전히 간 것은 아니다. 아직도 뭘 할 만큼 기력은 남아있다. 허리가 불편해 그렇지 사지를 잘 건사할 힘이 모자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의욕이 샘솟듯 하고 그 옛날을 더듬어 보기도 한다.
 
비록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인으로 태어난 걸 자랑한다. 그들은 "나"보다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 엄마 우리나라지 내 엄마 내 나라는 없다. 한국인은 느려터진 것은 참지를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리고 계산은 순식간이고 명확해 고스톱 한 판을 30초를 넘기지 못하고 해치우는 사람도 많다. 지금 한국이 한 세기도 안돼 숨을 몰아가며 한판에 발전시킨 것을 멀리서 보고 있으면 뿌듯하다. 미국에서는 오래 전 타 인종에 한때 주눅이 들 때가 있었으나 날이 갈수록 모국이 발전해가니 한국인을 싸 잡아 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동네를 만들고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고 이재에 밝으니 타 동네 사람이 쫓아 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한국인은 악착같다. 불의를 보고 거품 무는 거야 당연하다고 하지만 모국에서나 이국에서나 같이 총까지 들고 맞대결하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광주가 살아있지만 LA에서는 그 무서운 검은 아저씨들을 질리게 만드는 것을 보면 진돗개가 사람을 닮았는지 사람이 개를 닮았는지 어느 날은 구분이 안 간다. 남자들이야 군대를 다녀와 전투력이 남아 있겠다 하지만 아줌마들의 걷어붙인 행주산성 막가파 전투력을 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아닌 것 같다. 시장 좌판도 아줌마들이 끼고 있지 남정네는 멀리서 지겟다리만 지키고 앉아있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유독 비빔밥을 좋아한다. 다른 민족에게는 보기 힘든 밥상이다. 뭔가 복잡하다 하면 한 그릇에 다 몽땅 집어넣고 5분이면 끝난다. 한국의 산하를 둘러봐도 옛것과 최첨단이 섞여 눈이 어지러울 지경인데 한눈에 다 비벼 버리고 세계에서 제일 빨리 걷는다. 일본과 축구를 하는 날이면 온 국민이 너 죽고 나 죽자지 동점은 가당치도 않다. 한다 하면 화끈하게 하지 시시한 게 없다. 한마디로 다이내믹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은 감정이 유달리 풍부해 정이 많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를 좋아하며, 결혼식장 장례식장은 아무리 바빠도 찾아간다. 
영화를 보고 아직도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많다.
 
해외의 동포라고 그 DNA가 사라진 건 아니다. 아니 나도 아직은 쓸만한 잔재는 남아있어 지금처럼 기억 없는 세월을 보내느니 내일 새로운 해가 뜨면 무언가를 해야겠다. 이왕이면 언제까지 살는지 모르겠으나 요즘 첨단이라는 블록체인에서 EFT로 나의 창작물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Web 3.0에서 암호화폐로 투자도 하고 싶다. 채굴까지도 해봤으면 하는데 그건 정말 늙어 망령 났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최근 와튼 스쿨의 "마이로 기옌" 국제 경영학 교수가 쓴 "2030 축의 전환"이라는 책이 요즘 유행이다. 그 중 일부 서문에 보면 한국의 역동적 발전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2030년 이후의 세계는 8가지 축으로 한 번도 안 가본 세상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곧 다가올 피할 수 없는 장래다. 그러지 않아도 한국인은 외국인에게는 다방면에서 연구 대상이다. 특히 요즘 "K 문화"를 보고는 꼭 "김정은" 같지는 않다고 한다. 아니 둘 다 뭉툭거려 연민의 정을 갖고 보면서도 언젠가는 오천년 묵은 화산이 폭발해 세계를 뒤흔들 암묵적 외경스러운 존재로 생각한다. 그냥 그대로 내년에도 파이팅이다. (hanprise@gmail.com)  

한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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