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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사소할 수 없는 ‘마이너 필링스’

 미국 뉴욕시로 와서 정신과 1년차 수련을 마쳤을 때가 1974년이었다. 마취과 수련을 시작하려는 남편을 따라서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 시로 이사를 갔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툴레인 대학(Tulane University)의 정신과 2년차 수련의 과정을  지원했다. 대학에서도 빨리 수련의 숫자를 채울 목적에서였는지 인터뷰도 없이 받아들였다. 학교 옆에 위치한 대규모 군 재활병원 입원 병동에서 환자를 인터뷰했다. 진단이 끝나면 치료 계획을 세운 뒤 간호사, 사회 사업가 음악 및 미술 치료사 등의 전문가들과 함께 치료팀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툴레인 대학 교수와 함께 세미나를 열어 내가 담당한 환자에 대한 보고와 함께 다양한 정보를 나누었다.  
 
어느 날 재활병원의 비서가 물었다. “닥터 정은 툴레인에서 2년차 수련의로 선발됐는데 왜 1년차의 일을 하세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같이 듣고 있던 이 대학 마일즈 교수가 정신과 과장에게서 알아본 결과는 너무나 황당무계한 인종차별 행위였다.  
 
막강한 권위를 가졌던 정신과 과장은 정신과 및 신경내과 전문의로 정신분열증 분야의 대가였다. 과장의 비서인 남부 출신 백인 여성은 한번도 아시안 수련의를 본 적이 없었기에 1년차 위치로 나를 강등시켜 놓은 것이다. 닥터 마일즈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나는 2년차들이 일하는 툴레인 대학병원의 정신과 외래로 옮겨졌다.  
 
그때 내가 느꼈던 불쾌하고 씁쓸하고 슬픈 감정들을 한인 2세 시인이며 수필가인 캐시 박 홍이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란 책으로 2020년 출판했다. 마이너 필링스는 ‘소수적’ 또는 ‘사소한’ 감정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책을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차별의 감정들을 표출하고 있다. 그녀는 올해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2년차 수련의로서의 권리를 박탈해, 3개월이라는 기간을 다른 5명(모두 백인 남성, 남부의 하버드라 자칭하는 툴레인 대학 출신들)보다 뒤떨어지게 한 후에도 그들은 내게 사과 한마디 없었다. 그 뒤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감정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솟아 올랐다. 이 책에 나온 몇 구절을 옮겨본다.  
 
“미국에 사는 아시안들은 연옥(purgatory)을 방황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백인이 될 수도, 흑인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흑인으로부터는 불신을 받고, 백인으로부터는 무시를 당한다. 단 흑인을 억누르는 데에 사용되지 않는 한.” “우리는 수학 잘하는 중간 매니저로서 자본가들의 공장이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이다. 그러나 절대로 승진은 없다. 리더다운 얼굴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안은 이 나라에 1587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내전이 끝나고, 흑인들이 노예제도로부터 해방되자, 중국의 쿨리들이 들어왔다. 그들에 대한 기록이 없고, 인권이 없었으니, 그들은 없었다.”
 
아시안은 차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아직도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시선은 남아 있다. 아시안은 힘없고, 멸시당하는 인종이었으나 이제는 미국 사회에 우뚝 섰다. 인종에 상관없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간적 권리를 함께 향유하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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