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늙어도 낡지 않는 마음
누구나 태어나면 서서히 늙어 가고 또 낡아 가는 것은 철리(哲理)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늙음과 낡음의 진정한 의미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있다. ‘늙음’과 ‘낡음’은 ‘님’과 ‘남’처럼 모음 ‘ㅡ’와 ‘ㅏ’의 차이 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 뜻은 서로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글자만 다른 것이 아니다. ‘늙음’과 ‘낡음’은 삶의 본질을 갈라 놓는다.곱게 늙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 마음과 인품이 곱게 늙어 간다면, 멋 모르고 날뛰는 청년의 추함보다 고운 자태로 거듭 태어나는 노년의 모습이 더욱 빚이 나고 아름답게 비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주변에서 항상 밝은 미소와 따뜻한 눈빛으로 이웃을 어루만지거나, 혹 성치 않은 아내나 또는 남편과 더불어 손잡고 공원에서 산책을 하는 노부부를 만나기라도 할라치면 그냥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다.
곱게 늙음은 가슴 속이 훈훈해지며 마치 고목에서 새싹이라도 움터 오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이렇듯 몸은 비록 늙어가더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새로움으로 살아간다면 평생을 살아도 낡지 않는다. 이토록 늙어도 낡지 않는다면 육신은 늙더라도 마음과 인격은 더욱 고매해지면서 내면에는 원숙한 삶이 펼쳐지고 더 깊은 깨우침이 다가올 것이다.
왜일까? 우리에게 곱게 늙어가고 싶다는 욕망은 그 속에 메마른 낡음보다는 오히려 새로움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오늘 행여 늙는 것이 두렵고 서러운가? 그리고 공연히 억울한 심정이 드나? 만약 그렇다면 이는 마음이 낡아가는 증거다. 혹 그런 마음이 든다면 먼저 생각을 바꾸어 보라.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새로운 마음으로 대하고 풀 한 포기, 돌멩이 한 개라 할지라도 의미를 새기고 감사와 기쁨의 마음으로 바라보라.
여생을 살아가는 동안 부단히 늙음과 낡음을 서로를 비교하면서 ‘새로움’으로 나이테를 그려간다면, 인생의 무게는 그만큼 더 보람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또 그만큼 더 원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람있고 원숙해진다는 것은 그게 바로 곱게 늙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아직은 젊은 나이인데도 낡은 마음이 지천에 깔려있다. 육신은 멀쩡히 젊었어도 욕심에 찌들어 인격(人格)은 없고 수격(獸格)만 남아 마음이 사악하고 생각이 낡은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정치꾼’들이 그렇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지만, 잘못하면 또 다른 편짜기가 될 것 같아 삼가고….
아무튼 사람은 거짓과 위선으로 똘똘 뭉쳐지면 결코 윤기 있는 ‘늙음’을 가질 수가 없다. 만약 모두가 이렇듯 탁하고 ‘낡음’만이 저잣거리에서 횡행한다면 우리들 주변엔 따듯함과 아름다움보다는 허무와 절망밖에는 남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행여 ‘늙음이 곧 낡음’이라는 고정관념이 바뀌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 여생이 내일부터라도 그냥 서서히 메마른 나무처럼 말라버릴까 걱정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마냥 좋은 게 좋은 것만 찾지 말자.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자상할 땐 한없이 부드럽더라도 불의 앞에서는 불같이 노할 수 있는 모습을 유지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손용상 / 소설가·한솔문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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