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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수에즈 운하의 굴삭기처럼

올 한해 국내외 뉴스를 되돌아보노라면 수에즈 운하에 꽉 끼었던 에버기븐(Ever Given)호가 이리저리 겹친다. 지난 3월 23일 해상교역의 급소에 좌초해 글로벌 물류 위기를 불렀던 컨테이너선 말이다. 22만t급 초대형 선박이 좁은 수로에 대각선으로 갇혀 옴짝달싹 못 한 초유의 사건이었다. 수천 척의 물동량을 멈춰 세운 이 배는 세계적 관심 속에 각종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도 탄생시켰다. 할 일들 사이에 치여 있는 자신, 나아가야 하는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불가항력을 빗대는 식이었다.
 
탈레반 점령 후 카불 공항에서 탈출을 모색하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심정도 그렇지 않았을까. 철조망 너머 미군들에게 아이라도 받아달라고 던질 때 다른 선택지란 없었다.  
 
고향에서 수만 리 떨어진 폴란드 국경 숲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중동 난민도 다르지 않다. ‘난민 밀어내기’를 국제사회 압박으로 활용하는 벨라루스 독재 정권의 덫에 빠져 한기와 굶주림에 떨고 있다. 만신창이 된 나라를 벗어나 미국 불법 입국을 시도하다 리오그란데 강둑에서 채찍 든 국경수비대에 쫓겨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밀항하던 보트가 전복됐는데 양쪽 해경으로부터 구조되긴커녕 “돌아가라”고 내침 당한 이들 역시 옴짝달싹 못 하는 에버기븐 신세다.
 
시베리아가 불타고 독일이 대홍수로 잠기는 등 이상 재해 속에 어쩌면 올 한해 지구 전체가 에버기븐이었을지 모른다. 온실가스를 부르는 화석연료를 대안에너지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후정상회의(COP26)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이 수중연설로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팬데믹이 누그러질 조짐을 보이자 전 세계는 억눌러온 소비와 성장을 향해 앞다퉈 달려갈 뿐이다. 방역과 경제회복이라는 두 과제 사이에서 각국 정부는 대각선으로 낀 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가 덮치면서 내년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에버기븐호가 다시 움직이기까진 일주일이 걸렸다. 뱃머리가 박힌 운하 제방에서 모래와 흙 수만㎥를 퍼냈고 예인선 수십 대가 동원됐다. 그 사이 우리 눈길을 끈 또 다른 장면이 있다. 길이 400m, 폭 60m 골리앗 선박 앞에서 묵묵히 제방 흙을 퍼내는 굴삭기였다.  
 
압도적인 덩치 차이는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 vs 하루 한 번의 산책 허용’ 등 또 다른 밈으로 번져나갔다. 불가항력적인 삶의 장애 앞에 할 수 있는 건 우공이산(愚公移山)뿐이란 걸 그렇게 자조했다. 내년도 올해처럼 다사다난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묵묵한 삽질’ 또한 계속될 것이다. 수에즈 운하의 굴삭기처럼.

강혜란 / 한국 중앙일보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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