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삶] 잘 가요, 2021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마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마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황인숙 시인의 ‘강’ 부분
시를 처음 읽을 때는 시적 화자가 성가신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연거푸 몇 번 읽다 보니 마음의 곤궁을 겪고 있는 화자 자신을 향한 질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일인칭인 나와 당신이라는 이인칭을 쓰고 있지만 서정적 주체 안에서 나와 당신은 하나로, 내적 자아가 다른 자아를 향해 단호함을 보이는 것이라고요. “인생은 어긋나기 일쑤이고 저미는 애간장은 다반사인데 엄살 그만 떨라고 하려거든 강으로 가라 강에 가서 실컷 투덜거려라”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요.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 모이면 아픔을 호소하는 일이 많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불편함이 커지는 것 아닌가 싶네요. 세월이 남기고 간 것이 몸과 마음의 아픔이기도 해서 몸의 이상 증상이 여기저기서 나타납니다. 젊었을 적에 없던 증상들이 나타나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지요. 특별한 지병이 없다 해도 한두 군데 병적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소연이 길어집니다.
병은 소문을 내라고 했습니다. 아픔에 관해 이야기를나누다 보면 치료법에 대한 정보도 얻게 되고 민간에서 전해지는 섭생법도 전해 듣게 되어 도움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세월의 그늘 같은 노화 현상은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요. 다만 받아들이고 취약한 부분을 보듬는 길밖에 도리가 없다 싶습니다.
그런데도 노화 현상을 너무 큰 병으로 받아들여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 앞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좀 담대하게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대개는 그렇지 못합니다. 나만의 고난, 나만의 역경, 나만의 실패로 여겨 마음의 병으로까지 번집니다.
팬데믹 시대를 사는 요즘엔 나 남 할 것 없이 피로감이 더 커집니다. 염려만 늘어가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심드렁합니다. 내 사정에만 갇혀 점점 좁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말만 하게 됩니다. 애초부터 누가 들어줄 걸 기대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내 안에 누적된 고통의 잔여물들을 털어 내고 싶은 것일 뿐.
실내공기를 환기하기 위해선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내부도 통풍이 필요합니다. 몸과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여야 합니다.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외로운지 관자놀이를 눌러가며 병을 키우지 말고, 심장을 갉아먹는 벌레에 대해 과감하게 손사래를 쳐야겠습니다.
수고했고, 고마웠고, 이만해서 다행이었던 2021년. 짧은 작별인사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시간의 바통을 건네받아야 합니다. 내일이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라고도 합니다.
미지의 날들은 ‘미지’라는 모호함만으로도 기대가 큽니다. 내일의 태양은 분명 오늘과는 다를 것입니다. 나약해지지 말고, 주눅 들지 말고 명년을 위해 단단히 채비해야겠습니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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