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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정형(定型)을 비틀다

겨울모자가 필요해서 백화점에 갔다. 예전과 달라서 요즘은 백화점의 존재가 옛날만큼 위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브랜드들의 점포들이 품격을 지키고 있다. 다음날, 동네 부티크에 가니 백화점보다 모자가 많았고, 그중에서 맘에 드는 걸 하나 찾았다. 나는 운두가 높고 챙이 달린 모자가 잘 어울려서 남자 중절모 스타일의 모자를 선호한다. 내가 고른 모자는 특별하지는 않으나 정형(定型)을 약간 비틀었달까. 심플하고 스포티한 것도 같으면서 운두가 높고 챙도 넓지 않아 내 얼굴에 잘 어울렸다. 
 
모자를 쓰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처음엔 머리 정수리에 원형탈모가 생기는 바람에 쓰게 된 것인데, 외출할 때도 머리 손질할 필요 없이 모자 하나 눌러쓰면 그만이니 편하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모자를 쓰면 마치 패셔니스타처럼 남달라 보이는 멋스러운 모습이 기분 좋았다. 남들과 똑같이 입는 것보다 남들과 다른 게 때로는 신선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는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편이라 비교적 정답에 가까운 유형이지만, 나만의 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적지 않았다. 나의 반란은 단발머리 시절에 그 단발을 언발란스로 자른다든지, 미니스커트가 처음 유행했을 때 나만은 샤넬라인을 굳세게 지켰다든지, 남들은 눈치도 못 챌 정도로 미미한 반란이었다. 대학 시절엔 데카당스나 아방가르드란 단어를 좋아해서 마치 내가 그런 전위적인 인물인 양 그 분위기에 취해 지냈다. 뭐 어떤 행동은 아니고 그저 남들이 안 입는 7부 코트를 입는다든가 청치마에 동대문 구제품 시장에서 산 초록색 남방을 입고 유행의 선도자인 양 코를 들고 다녔다. 비 오는 날엔 카페 의자에 몸을 묻고 앉아 샹송을 들었고, 쓰는 글들도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게 뭔가 새로운 것을 좇는 존재로 모험하듯, 도전하듯, 일생을 살아온 것 같다.  
 
파리에 사는 디자이너 박지원 씨는 내가 좋아하는 젊은 친구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그녀의 20대 시절이었다. 그때 그녀는 유명한 패션모델이자 잘 나가는 패션디자이너였다. 그녀는 재주가 무한대다. 디자이너니 만큼 패션도 뛰어나지만, 요리하면 냉장고에 있던 재료든 자연에서 얻는 재료든 그녀만의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내는 최고의 요리사다. 거기에 프레젠테이션까지 완벽한 요리가 되니 사진만 봐도 침이 넘어간다. 서울에 가서 팝업 레스토랑을 2주일간 열어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정도다. 그녀가 우러러 보이는 이유는 절대 평탄치 않았을 인생의 터널들을 통해 자기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 인문학적으로 성숙시킨 모습이다. 그런 그녀만의 깊은 내공은 그녀가 쓰는 글에서 그 유려함과 깊은 철학적 사고가 별처럼 빛난다.  
 


내가 모자를 쓰는 이유도, 정형 비틀기를 지속하는 것도 결국은 뭔가 다른 삶, 삶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나만의 어떤 표현법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런 우리들의 작은 배움들이 모여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박지원이란 여성이 많은 여성에게 삶을 개척해가는 용기와 지혜를 전파하듯이.
 
코코 샤넬도 “단순함이란 모든 우아함의 기본이다.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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