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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분별하며 삽시다

 어떤 이에게는 고약한 냄새의 홍어회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없어서 못 먹는 천하 일미이다. "홍어회는 맛있는 음식이야" "홍어회는 맛없는 음식이야" 모두 틀린 말이다. 단순한 다름의 문제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르다는 이름으로 용인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1=3'이라는 학생에게 "단순히 다른 것이니 괜찮아"라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노예제도가 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언제나 틀리다고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현대 미국인들에게 '거짓'인 것은 분명하다.
 
불가에서는 "분별하지 마세요" "판단하지 마세요" "틀을 만들지 마세요"라고 흔히들 말한다. 인생은 판단과 결정의 연속이라고들 한다. 직업이나 배우자를 정하는 일은 물론 집과 차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식당 메뉴를 고르는 일까지 분별과 판단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일상을 영위할 수 없다. 이 글도 읽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분별하지 않는다면 내 아내와 친구의 아내도 구분할 수 없을 것이라던 노선사의 충고를 가벼운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틀을 만들어 자신을 가두지 말라는 말도 흔히 듣는다. 유감스럽게도 불법 공부를 전문으로 하는 필자는 여러 가지 틀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를 구속시키고 산다. 정치인들에게는 정직해야 한다는 틀 성직자인 필자에게는 술과 담배를 삼가해야 한다는 틀을 만들어 놓았다. 이 외에도 수도 없는 틀을 만들어 놓고 여기서 벗어나면 비난도 하고 반성도 한다. 이게 잘못된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수행'이라 일컫는 성자들의 경전을 공부하고 실천하려는 일련의 노력들이 결국은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자신을 맞추는 것 아닐까.
 
불교의 핵심이 선을 행하고 악을 그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선과 악을 구분해야 한다. 선악을 초월하라는 말은 선악에 메이지 말라는 말이지 선과 악을 구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명상과 경전공부를 통해 지혜를 밝히려는 것은 시비를 보다 명백히 밝히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별하지 마세요"가 불가에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최대한 신중하게 분별하라는 뜻이 있다. 경계를 대하면 중생은 착심과 습관으로 반응하고 부처는 자성으로 회광반조한다. 착심과 습관이 남아있는 중생이 100% 바른 분별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예수님이나 부처님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어떠한 분별과 판단을 해서도 안 된다. 분별을 하되 나의 생각이나 판단이 틀릴 가능성을 받아들여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둘째 분별없는 자리에서 참 분별이 나옴을 알아야 한다. 불교의 핵심 개념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빌 공(空)자이다. 완전히 비었다 하여 진공(眞空)이라고도 한다. 진공이 되어야만 참다운 지혜가 발현 될 수 있다. 지혜가 요구되는 설교 준비를 할 때 필자가 참고경전을 읽는 것보다 마음을 비우는 명상에 더 공을 들이는 이유이다.  
 
막연히 분별하지 말라 할 것이 아니라 분별없는 자리에서 나오는 참분별을 하기에 힘써야 한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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