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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백신의 확증편향

정구현 선임기자·부장

정구현 선임기자·부장

백신이 문제다.
 
어디를 가나 백신 찬반론 얘기다. 접점 없는 충돌은 종종 토론을 넘어 감정다툼이 되고 만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어느 편을 들기가 어렵다. 양쪽 모두 논리적 허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자기 주장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백신을 맞아야만 한다는 쪽에서는 효용성을 앞세워 부작용에 대해선 눈감는다. 극소수일 뿐이니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쪽에서는 백신의 효용성을 믿지 않고 부작용을 확대 해석한다. 뿐만 아니라 팬데믹이라는 대전제 자체를 부정한다.
 
팬데믹 이후 심해진 사회현상중 하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심리다. 좀 어려운 말로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다 확증편향은 있다. 특히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간절히 바랄 때, 그동안 옳다고 믿어온 신념을 지켜야만 할 때 더 도드라진다.  
 


확증편향에 빠지기는 쉽다. 나열된 사실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경제학에선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이라 하는데 맛있는 체리만 골라 먹는 걸 뜻한단다.  
 
신문, 방송 매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게 된 이유중 하나가 기자들의 ‘체리 피킹’ 행위 때문이다. 먹음직한 팩트만 강조하고, 식욕을 떨어트릴 수 있는 팩트는 쏙 빼면 없던 일도 사실로 만들 수 있다.  
 
2005년 당시 폭스뉴스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오라일리 팩터(O’Reilly Factor)'의 체리 피킹은 전설처럼 남아있다.
 
부시 정부의 빈곤퇴치정책을 치켜세우기 위해 직전 클린턴 행정부의 집권 4년차 빈곤율과 부시 집권 4년차를 비교했다. 각각 13.7%와 12.7%였으니 시청자들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전체 그림의 사실은 달랐다. 클린턴 재임기간에 빈곤율은 계속 낮아졌고 퇴임한 2000년에는 3.4%까지 떨어졌다. 쉽게 말해 빈곤율 3.4%로 출발한 부시 행정부가 불과 4년 만에 다시 12.7%까지 올려놓았던 셈이다. 비판을 해도 부족할 통계를 체리 피킹으로 교묘하게 눈속임한 보도였다.
 
전문가들은 인간이 확증편향을 갖게 되는 이유를 크게 2가지로 본다.  
 
먼저 '자기 보호를 위한 본능'이라는 시각이다. 내가 지켜야만 하는 신념과 충돌하는 정보는 축소나 왜곡으로 '재해석'해 위험요소를 차단하는 생존 전략이라는 의견이다. 신념의 붕괴를 막으려는 본능적 행위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이유는 지적 우월감이나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확증편향 현상은 최근 SNS라는 '체리 피킹' 도구를 만나 더 극명해졌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보여준다. 또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친구로 이어준다. '다른 사실'을 알 기회조차 없어졌지만 오히려 그게 더 마음 편하다고들 한다.
 
접점없는 백신 논쟁에도 SNS가 한몫했다. 상대를 반박할 전문자료들은 이미 '내 친구들'이 친절하게 체리피킹해 SNS로 알려줬으니 절대적 진실이라고 주장하는데 거침이 없다.  
 
그런데 양쪽 모두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어떤 백신도 100% 안전하거나 100% 효과가 확실할 수 없다는 '팩트'다. 그러니 백신을 믿을 수 있다느니 반대로 효과가 없다느니 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 백신의 접종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온전히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절대적 진실이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쪽을 선택을 해야만 할 때 사람은 '최선'을 고른다. 물론, 최선의 우선순위는 개개인이 다를 수 있다.
 
2010년과 2013년 2차례 아프리카의 극빈국인 '차드'에 취재차 다녀왔다. 듣도보도 못한 나라에 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백신 접종이었다. 장티푸스, 황열병, 광견병 등 3가지 백신을 한꺼번에 맞는 바람에 며칠간 심하게 앓아야 했다. 또 말라리아 약인 '클로로퀸'은 다녀와서까지 한동안 먹어야 했고, 그 부작용으로 두통에 시달렸다.
 
아프고 힘든 백신과 약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안전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해보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때 아들은 돌을 갓 넘긴 아기였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아들에게 몹쓸 병을 옮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당시 내겐 '최선'이었다.
 
백신은 문제가 아니었다. 

정구현 / 선임기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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