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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타이밍(Timing)

타이밍 한번 절묘하다. 가족 형편상 추수감사절은 양보하고 금요일에 우리 집에서 터키잔치를 하기로 했다. 노느니 염불이라 추수감사절에는 아예 일하고 늦게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보고한다. 싱크대 밑에서 물이 새어 부엌 바닥에 홍수가 났단다. 여기저기 플러머한테 연락을 취해 보았으나 일 년 중 가장 큰 미국 명절인 추수감사절에 누가 일을 하겠는가. 다행히 한국인 한 분이 연락되었다. 출장을 와서 상황을 체크한 후 파트를 아마존에 오더 하니 일요일에 도착한단다. OMG! 8명의 입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막중한 이 소명을 어찌할꼬! 눈앞이 깜깜했다. 
 
예기치 못한 재난으로 이 모든 계획을 취소해야 하나! 평소에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에 곯아떨어지는 내가 시름시름 걱정과 염려 사이를 요동치다가 새벽에 일어났다. 팔을 걷어붙이고 지하실에서 물을 날라 다듬고 씻고 끓이고 헹구고 조리하면서 더러워진 물은 뒷마당에 날라다 버렸다. 유난히 깔끔 떠는 성격에 얼마나 법석을 댔던지 나중에는 양팔과 어깨에 경련이 일어났다.  
 
금요일 오후 1시, 추수감사절 만찬이 성대하게 차려졌다. 나의 사정을 잘 모르는 애들은 오늘 구운 터키가 지금까지 먹어본 터키 중 제일 맛있었다며 비법을 묻고 사위는 오성급 이상의 상차림에 감동을 하였다며싱글벙글한다. 남은 터키로 칼국수를 만들어 저녁까지 지어 먹여 보내고 나니 온몸이 그만 학대하라며 찌그러져 운다.  
 
모처럼 휴가를 내어 집에 돌아온 아들네를 위해 토요일 아침, 점심 그리고 김치와 밑반찬 대여섯 가지를 싱크대 없이 재래 방식으로 만들어 바리바리 싸서 밤늦게 보냈다. 목요일 밤부터 토요일 밤까지 꼬박 이틀 동안 싱크대 없이 요리하기 대회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 추수감사절의 참뜻을 제대로 몸으로 체험했다. 막 다섯 살이 되어가는 손자 에반이 만찬 석상에서, 돌아가면서 각자 가장 감사할 일을 말해보자는 기특한 발상에 난 얼른 싱크대를 생각했지만 입속에서만 우물거렸다. 옛날에 아낙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생계를 유지하던 때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쉽게 살고 있는가.  
 
오늘 일요일 아침, 싱크대는 정상복귀 되었다. 싱크대 앞에서 더운물 찬물을 마음대로 틀며 새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감사와 감동이 동시에 왼쪽 가슴에 차올랐다.
 
세상일이란 항상 이렇게 양면성이 있다. 긍정과 부정, 득과 실, 기쁨과 좌절, 이들이 항상 리드미컬하게 반복된다. 그것이 바로 삶의 묘미 아닐까. 항상 좋은 날씨만 지속하면 사람은 나태해지기 쉽고 많은 물질을 소유한 자는 정신이 빈곤해지기 쉽다. 항상 겸손하고 감사하고 사랑을 나누는 삶은 우리를 풍요롭게 해준다. 반 컵의 물을 보며 ‘반 컵 밖에’ 하며 한숨을 쉬는 사람과 ‘반 컵이나’ 하며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다.  
 
올 한해도 이제 저물어간다. 추수감사절이 끝나고 나면 곧장 할리데이로 이어진다. 미국의 경제는 이때 가장 활기를 띤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비즈니스는 흥이 난다. 모두 즐겁고 분주해진다. 주위를 돌아보며 감사하고 싶은 사람들을 찾는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사람들, 나를 행복하게 해준 사람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자그마한 토큰을 전해주고 온정을 나누고 싶다. 이번의 절묘한 타이밍은 나를 성숙하게 그리고 감사할 줄 알게 해주었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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