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삶]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그대가 꼭 착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먼 길을/ 무릎으로 기며 참회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대 육체의 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하게 두라/ 상처를 말해 보라, 그대의 것을, 그러면 내 상처도 말해줄게/ (…)그대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그대의 상상 앞에 자기를 드러내고/ 기러기처럼 그대에게 소리칠 것이다, 들뜨고 거친 목소리로/ 만물로 이루어진 이 세계 어딘가에는/ 다시, 또 다시 그대 자리도 있다는 것을-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 부분
이맘때가 되면 뭔가 결산을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생긴다. 한 해를 돌아보게 되고 그러자면 후회와 반성이 앞선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지만 결산서는 미흡하다. 신앙적으로도 참회만 깊다. 아니 참회를 스스로 강요하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일은 인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의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거나 강박적이 되면 자기 자신을 들볶는 가혹행위가 되는 건 아닐까 묻게 된다.
오체투지가 신에게 이르는 길이라고 믿고 온몸으로 기어 사막을 가로지르는 사람은 그만의 믿음이 있어 그리 행할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로 신에게 이르기도 할 것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육체라는 쉽게 깨지는 연약함을 지닌 존재들이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넘어지고 쉽게 낙망하는 여린 자들이다.
인생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한다. 당연한 말이겠다. 그러나 말의 강박에 포위되다 보면 자기와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사방에서 아우성을 치는 듯하다. 마치 자신이 싸움의 대상인 것 같은 모순에 직면하기도 한다.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메리 올리버는 말하는 듯하다. “그러지 않아도 돼. 자기 자신을 학대하지 마. 모두가 착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린 세상을 조화롭게 하는 하나의 개체로 존재의미가 충분해”라고.
세상에는 사회적 혹은 윤리적 잣대가 있다. 그 기대치에 다다르려고 노력하지만 모두가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다. 한 해를 결산하는 일도, 한 생을 점검하는 일도 그렇다. 미숙아의 체중처럼 늘 미달이기 일쑤여서 풀이 죽는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거기가 한계라면 그 정도라도 해낼 수 있었음을 격려하며 북돋워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쯤에서 자신을 안아줘야 한다. 미숙함까지도 품어주고 다독여 해줘야 한다. ‘나’라는 유일성, 충분히 사랑받고 위로받아 마땅하다고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보듬어주어 체온을 높여야 한다. 그럴 때 타인의 상처가 눈에 보이고 타인의 신음이 들리기도 할 것이니까.
그대와 나, 소외되고 외롭고 부족할지라도 어딘가에 자기만의 자리가 있겠고 그 자리는 세상의 한가운데라고 말해주는, 충분히 빛나고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시 한 편으로 12월의 흐린 오후가 뭉근하게 데워진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2007년 출간된 소설가 김연수의 장편소설 제목이다. 소설 첫 페이지에 메리 올리버의 대표작이기도 한 ‘기러기’가 소개되었고 시의 한 행을 차용해 제목으로 삼아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과의 교감에서 오는 경이로움을 시로 써온 미국의 대표시인인 메리 올리버는 몇 년 전 타계해 이 세상엔 없지만 그녀의 시는 점점 더 밝은 빛이 되어준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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