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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맬컴X와 리튼하우스, 그리고…

 1965년 2월 14일 일요일 새벽, 뉴욕 퀸스의 주택에 화염병 두 개가 날아들었다. 그중 하나가 거실 창문을 뚫고 들어갔다. 낯선 소리에 놀란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X와 부인 베티 샤바즈는 어린 네 딸을 깨워 업고 잠옷 차림으로 탈출했다. 집은 다 탔지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심각한 위험의 전조였다.
 
맬컴은 일주일 뒤 아프리카계 미국인 통합기구 연설을 위해 흑인 활동 중심지이던 뉴욕 할렘의 오듀본 볼룸을 찾았다. 연단 주변으로 400명 넘게 몰려들었다. 그때 청중 사이에서 말싸움이 벌어졌다. 소동이 진정되려던 순간 괴한 셋이 무대에 올라 총을 난사했다. 맬컴은 온몸에 21발의 총을 맞고 숨졌다. 범인 한 명은 잡히고 두 명은 달아났다.
 
당시 도주한 살인범으로 몰려 20년 넘게 옥살이한 흑인 둘이 최근 누명을 벗었다. 사건 발생 56년 만이다. 한 사람은 83세 노인이 됐고, 다른 한 명은 이미 세상을 떴다. 수사는 부실했고, 증거는 무시됐다. 서둘러 치워진 현장에선 댄스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재수사를 진행한 뉴욕 맨해튼 지검장은 “정의가 실추되고 법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공개 사과했다.
 
위스콘신주에선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 두 명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백인 청년 카일 리튼하우스가 지난달 19일 무죄 방면됐다. 1년여 년 전 자경단을 자처해 거리로 나섰던 그는 AR-15 반자동 소총을 들고 활보하다 시위대에게 쫓기자 발포했다. 배심원단은 정당방위라고 봤다.
 


인권운동 지지자들은 경악했다. “사법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비판했다. 뉴욕·시카고 등 주요 도시에선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총기 옹호론자들은 환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리튼하우스를 “용감한 인물”로 추켜세우고 자신의 집이 있는 플로리다로 불러 환대했다. 의회 인턴으로 채용하고 후원 기금을 모아주겠다는 제안도 나왔다. 리튼하우스는 영웅이 됐다. 미국 사법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가열됐다.
 
그로부터 며칠 뒤 조지아주 법정에선 멀쩡히 조깅하던 20대 흑인 청년을 총으로 살해한 백인 남성 세 명 모두에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 배심원 12명 중 11명은 백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반전이었지만 이 사건은 처음에는 두 달 넘게 그냥 묻혀 있었다. 총격 장면이 담긴 결정적 영상이 지역방송을 통해 공개되기 전까지는. 바이든 대통령은 “사법제도가 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충분치 않다”고 일갈했다.
 
연말 미국인의 눈과 귀를 잇달아 사로잡은 수사와 재판은 형사사법 제도의 본질을 되묻는다. 정의는 어디쯤 있는 걸까. 불신의 시대를 피해 가지 못한 우리도 그 질문에서 예외는 아니다.

임종주 / 워싱턴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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