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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그들은 어떻게 변명했을까?

KBS 교양프로 ‘그날’ 시청 후 지난주 가까운 English Town을 찾았다. 플리마켓으로 유명한 그곳은 주말이면 전국 각지로부터 100여 대 이상의 전세 버스가 손님들을 실어날랐을 정도로 번창했지만 과거에는 가장 악랄한 노예시장의 하나였다는 오명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내가 본 ‘그날’의 주제는 1800년대 산업혁명과 함께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의 발달한 항해술이 신대륙 및 아시아 식민지 개척의 수단으로 활용도 넘쳤다는 것과 담배, 설탕, 커피, 차를 유럽에 제공키 위해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조성 후 흑인을 노예로 부렸다는 잔혹사다. TV가 준 악한 잔상 때문인지 English Town의 분위기는 전과 아주 달랐다. 노예들의 울부짖음과 차가운 비통함이 어른거려 쉽게 발길을 돌릴 수가 없어 몇 번이고 가다 말고를 반복해야 했다.
 
역사적으로 흑인 노예무역의 시작은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이다. 그들은 9세기부터 아프리카 잔지바르 (Zanzibar)에서 흑인 부족장들에게 럼주, 의류, 총들을 주고 대신 받은 흑인들을 유럽 각국에 노예로 팔아 왕국재정을 충당했다. 그런 뒤 이슬람 왕국은 역사 속에 사라졌고 상권은 포르투갈이 이어받았다. 1502년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식민 개척한 뒤 맹그로브의 일종인 파우 브라질이란 식물에서 질 좋은 염색물질을 얻을 수 있음을 원주민을 통해 배운 뒤 1526년부터 대규모 파우 브라질 및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조성하고 아프리카 흑인들을 끌어와 노예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1640년 교황청이 노예무역을 금하는 칙령을 내리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무역은 영국이 독차지한다.
 
영국은 1534년 헨리 8세가 수장령을 선포한 후 지금의 브렉시트(Brexit) 같은 길을 걸었기에 교황의 칙령으로부터 자유로웠다.
 


흑인노예 하면‘미국’으로 인식됨은 억울할 수도 있다. 물론 같은 인간인 흑인들을 짐승처럼 부리고 인권을 짓밟거나 천륜을 거스른 잘못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아프리카 부족장들의 사냥행위나 수송과정의 험한 대우로 인해 15%에서 많게는 33%의 사상자를 생성시킨 영국 장사꾼의 몫까지 덤터기 씀은 과해서다.
 
성경 욥기를 보면 “남종이나 여종이 나로 더불어 쟁변할 때에 내가 언제 그의 사정을 멸시하였던가? 그리하였다면…하나님이 국문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나를 태속에서 만드신 자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대목이 있다.
 
욥기서는 적어도 기원전 1500년경에 쓰인 책이다. 국가도 민족도 법도 전무한 족장 시대에 억만장자였던 욥이 종에게조차 갑질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자기와 신분이 다른 남녀 종을 총칭하여 만드신 이가 동일하다고 고백함은 놀랍다. 따라서 욥의 지론은 모든 인간은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형제자매인데 신분과 피부색이 다르다고 멸시함은 만드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으로 심판을 부른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오늘날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가장 많이 부르짖는 나라는 단연 영국, 프랑스, 스페인, 미국이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 400년 동안 1200에서 많게는 2000만 명이나 되는 흑인을 신대륙에 노예로 팔아넘기면서 마치 자기들과 흑인은 만든이가 다른 것처럼 행세했다. 과연 그들이 하나님의 국문을 어떻게 비껴갔을까? 궁금하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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