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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잘 모릅니다

내가 기자 출신이기 때문인지 한국 정세에 관해 묻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나는 “잘 모릅니다”하고 주저 없이 대답한다. 내가 시를 쓰는 줄 알고 시나 문학에 관해 묻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조금 망설인 후 “나 같은 이름 없는 시인이 뭘 알겠어요. 그저 생각이 떠오르면 긁적거립니다”하고 한다. 내가 사는 이 나라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45년 전 첫발을 디뎠을 때 비해서는 이해가 깊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을 모른다”는 것이 솔직한 대답이다. 그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어렴풋이나마 세계를 알 것 같다고 대답하는 것조차 무책임할 것이다.  
 
내가 6년 동안 해 온 영어 북 클럽 분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29살에 미국에 왔고, 우리에게 영어는 모국어가 아닙니다. 여러분들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같이 책을 읽고, 같이 배우고 있습니다. 나에게도 ‘아는 척’ ‘잘난 척’ 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부끄럽게도 그때는 지금보다 아는 것이 더 없었던 때였다. 왜 그랬을까. 말 같지 않은 내 말을 들어 준 분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래선지 무시도 당했다. 모두 내 책임이었겠지만 상처로 남아 있다. 한 동창은 내가 실수로 한 말을 듣고 여지없이 모욕을 주더니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다. 차이는 나는 가슴 깊이 새기고 그들은 잊어버리는 것일 것이다.  
 
요즘 자주 “오늘 하루도 실수하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한다. 내 첫 시집에 ‘대차대조표’라는 시가 있다. 내가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한 것은 플러스, 남을 실망하게 한 것은 마이너스, 연말 결산을 해서 항상 플러스로 유지해야 한다는 시상이었다. 젊은 시절의 나는 압도적으로 마이너스가 많은 ‘적자 인생’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조금씩 이해하고, 성격이 느긋해지고, 정직해지려고 노력하고, 가끔 사회봉사도 하게 되면서 ‘흑자 인생’으로 전환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아직 빚을 갚기에는 멀었다. 앞으로 살아있는 동안 선행을 많이 해 흑자를 올려야겠다.  
 
얼마 전 옛날 보스와 자리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처음에 참석을 주저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모시고 일하면서 그가 내린 결정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커뮤니티를 위해 일할 기회를 받았으며, 그분은 나에게 여행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좁은 생각을 떨쳐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같이했다. 그때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소식을 끊고, 정 많은 여자분들이 많이 참석한 것을 보고 가슴이 저렸다. 이제는 ‘자연스러운 사람’, ‘부족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은 어딘가 거리가 느껴진다. 다시 한 해가 가고 있다. 연말 정산에 엄청난 마이너스 칼럼은 없는 것 같다. 큰 플러스가 없는 것은 아직도 이기심을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해가 오면 막내딸이 첫 아이를 낳아 딸 셋 모두 엄마가 되고 나는 네 손자의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5월이 되면 나이를 한 살 더하고 그 날은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주치의는 당뇨를 조심하라고 계속 야단을 칠 것이고 나는 부지런히 걸을 것이다.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또 지나고, 그 날은 오고 있을 것이다. 기다리지 않는 그 날은 결국은 오고야 말 것이다. 누가 나에게 세상을 아느냐고 물으면 “모릅니다”하고 대답할 것이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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