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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선교는 숙명, 마음 부자들만 모였다

빈민선교는 숙명, 마음 부자들만 모였다

김재억 목사, 조영길 선교사, 최정선 이사장(왼쪽부터)

김재억 목사, 조영길 선교사, 최정선 이사장(왼쪽부터)

 워싱턴지역의 대표적인 도시빈민 사역단체로 자리매김한 굿스푼, 이 단체를 이끄는 이들은 모두 운명처럼 이끌려 이 곳에서 빛나지 않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며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같은 존재가 되었다.
  
굿스푼 대표 김재억 목사는 남미에서 선교사역을 하다가 2000년 말 미국에 도착해 호구지책으로 새벽3시부터 베이글 굽는 일을 하면서도 도시빈민선교에 대한 소명을 잃지 않았다. 워싱턴D.C.에서 전도와 홈리스 미션을 하며 밤 늦도록 진행되는 고된 일정에 졸음 운전을 하다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  
 
2004년 애난데일 세이프웨이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일자리를 찾는 히스패닉 일용직 노동자들을 보면서  
애난데일에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도시빈민 라티노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에게 양푼에 담은 스파게티와 컵라면을 나눠줬던 알이 굿스푼 시작의 계기가 됐다.  
 
작은 시작은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명의 동반자를 만났다.  


외국어대 서반어과 출신의 조영길 선교사는 본보에 실린 굿스푼 관련 기사를 보고 관신을 갖던 차에 그로서리에서 우연히 김재억 목사와 조우해 18년째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조 선교사는 남미 에콰도르에서 무역상사 직원으로 일하는 등 원어민 못지 않은 스패니쉬 실력을 갖추고 있다. 스패니쉬 회화책도 저술한 바 있으며 본보 문화센터에서 강좌를 열기도 했었다.  
굿스푼이 25일(목) 버지니아 애난데일에서 개최한 나눔행사에 300여명의 도시빈민이 참여했다.

굿스푼이 25일(목) 버지니아 애난데일에서 개최한 나눔행사에 300여명의 도시빈민이 참여했다.

 
또한 그로서리 체인점 세이프웨이의 스탁매니저로 일하는 최정선 이사장까지 합류하게 되면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을 주류사회 그로서리 마트에서 기부받으며, 굿스푼은 구호식품 배포처와 횟수를 크게 늘릴 수 있었다.  
팬데믹 이전만 하더라도 구호단체 푸드뱅크와 파트너십을 맺고 20만 파운드의 식품을 후원받았지만 현재는 팬데믹으로 인해 지원이 끊긴 상태다.  
 
하지만 한인이 운영하는 이스턴 푸드, 휄로십 교회, 트레이더 조 등에서 지난 2년간 물품을 지원받으며 근근이 유지해 가고 있다. 후원 받는 물품은 예전 수준에 훨씬 못 미치지만 어려움을 호소하는 도시빈민은 팬데믹 이전보다 훨씬 많아진 상황이다.  
 
최정선 이사장은 “ 40년간 이 지역에서 살았는데, 최근들어 워싱턴D.C.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영향으로 볼티모어 지역의 홈리스 숫자가 급증하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면서 “의료봉사가 있는 날에도 진료가 아닌 음식 배급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 다른 사역들 보다 음식 사역이 급박한 시기”라고 전했다.  
 
선교 사역의 원천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김재억 목사는 "빈민선교는 숙명에 가까운 운명"이라는 사실을 처음 고백했다.  
김 목사의 부친은 한국전쟁 상인군인이었다.  
평양 출신으로 연희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였던 부친은, 6.25전쟁에서 어깨가 무너지고 눈을 잃고 무릎도 부서진 상태로 돌아왔다.  
 
전쟁중에 탄환이 눈에 박히는 부상을 입어, 앞을 보지 못 하고 눈에서는 피고름이 흘렀다.  
어린 시절의 김 목사는 그런 아버지의 기괴한 모습이 무서웠다고 했다.  
가장이 이러하니 집안은 늘 가난했다. 김 목사의 기억 속 아버지는 술에 취해 계시던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북진 과정에서 폐허가 된 평양 고향동네를 목격하고 아홉 형제가 모두 뿔뿔히 흩어졌다는 얘기에 무척 괴로워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트라우마는 피난민촌에서 가난과 술, 가정폭력으로 이어져 오롯이 김 목사의 상처로 남았다.  
김 목사는 현재 침례교 목사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구세군 교회에 출석했다.  
 
여덟 살 소년 시절부터 자선냄비 종을 흔들었던 김 목사, 그는 지금하고 있는 굿스푼 사역이 어린 시절부터 가장 익숙했던 일이었기에 
운명을 돌아나온 숙명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구호활동이 끝나고 모금된 돈으로 사관들이 정확하게 계산해 라면, 19공탄 연탄, 쌀, 밀가루를 구입해 피난민촌을 돌며 각 가정마다 나눠주는 일까지 함께 했다.  
 
조 선교사와 최 이사장은 구호물품 계산에 정확성을 기하려고 노력하는 김목사의 모습이 구세군 사관 시절에 몸에 베인 철저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 목사에게 어린 시절의 구세군 경험은 오늘날 빈민선교를 위한 커다란 훈련장이었던 셈이다.  
김 목사는 두번의 죽을 고비를 맞았다.  
 
열여덟살이 되던 해에 거주하던 안양의 피난민촌 무허가 건물에 산사태가 덮쳤다.  
극적으로 탈출해 살았지만 당시 사고로 46명이 사망한 큰 사고였다.  
집을 잃은 김 목사의 가족들은 구세군 구호를 받으며 6개월간 이재민 생활을 해야했다.  
 
자존심 강했던 십대 시절, 수치심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대학 입시를 포기하고 군무원 공채 시험에 합격해 특수정보 요원으로 일하다 뒤늦게 우유와 신문을 배달하며 고학으로 신학 공부에 전념해 석사학위까지 7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주의 종이 돼 목회를 한다면 타국에서 타인종의 언어로 목회를 하겠다 결심하고 목사 안수 직후 남미로 건너가 선교를 하다가 2000년 도미했다.  
그는 빈민선교가 아니라 다른 길을 갔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없었냐고 묻자 “지금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 감사하고 단연코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일은 즐거워서 하는 것이며 다른 일은 할 줄 아는게 없다고 말한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20년 가까이 거리 선교를 해 오며 귀찮은 마음은 단 한번도 없었다.  
빈민선교는 뜻하지 않는 직업병을 남겼다.  
 
조 선교사는 “김 목사가 전혀 내색하지 않지만 직접 도네이션 받는 물건들을 하도 많이 나르다보니 허리도 안 좋고 눈도 성치 않아 걱정”이라고 전했다.  
굿스푼 관계자들은 남미 출신 이민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마음의 문을 좀더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조 선교사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치안이 불안해 청소년들이 MS13의 총알받이가 되는 곳”이라며 “배고픈것은 기본이며, 치안이 안 좋아 미래가 없다는 절망감에 기차 지붕과 꽁무니에 매달려 목숨 걸고 미국행을 감행한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도움을 받는 라티노 중에서는 미국 와 살면서 자국의 대사관, 영사관을 포함해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도움 받은 적이 이제껏 한번도 없었는데 굿스푼 선교단체에서 처음 받아본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굿스푼의 도움을 받는 대부분의 라티노들은 가난한 시골에서 소작농으로 일 하던 사람들이다.  
 
일제시대 만주와 연해주에 터전 잡았던 한국사람들과 같은 처지다.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고 인간관계와 사회성이 결여돼 먹고 살기 위해 이주해 온 이민자가 대부분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국경을 넘어와 먹고 살기 위해 아귀 다툼을 벌여왔기 때문에,  남에게 도움을 받아 본 적도 없고 도움을 준 적도 없어 고맙다는 표현에도 서툴다.  
 
사람이다보니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이들의 기본 목적은 선교와 전도다.  
김 목사와 조 선교사는, 굿스푼이 인권단체가 아니고 구제 선교단체이므로 부족한걸 채워주고 영혼 구원이 목적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강력범죄 전과가 없고 일정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에게 선별적 사면을 한다면 이들에게 최고의 복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간혹 굿스푼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  
 
한인 중에도 어려운 이들이 많은데 왜 한인이 라티노와 흑인들을 돕느냐고 항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굿스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애난데일의 한인 홈리스들을 돕고 있다.  
항간에는 굿스푼이 라티노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구호금을 모아 생활하고 이름을 알리는 단체라고 음해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김 목사는 “하나님만 본심을 아시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최 이사장은 “하나님이 주신 각기 다른 소명과 부름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할 뿐 모두의 요구대로 다양한 인종, 계층을 포함하기에는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걸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최 이사장은 “여러 한인교회가 해외선교에는 관심을 많이 보이는 반면 지역의 선교 사역 단체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것에 안타까운 마음”이라면 “매번 언론에 소개되지 않을 뿐 굿스푼은 라티노 흑인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해 있는 한인들에게도 식료품 지원과 의료 사역을 통해 도움을 드려왔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그 도움이 모두를 흡족하게 할 수 없다는것을 알지만 굿스푼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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