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11월에 들어서서
뉴욕에는 온갖 색깔이 넘쳐난다. 세계를 느껴보기에 적당하게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풍속과 음식과 의복과 언어가 거리를 채우고 있다. 이웃에서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오가도 혹은 처음 보는 아주 이상한 옷차림이 지나가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뉴욕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럽고 그렇게 뉴욕이라는 풍경을 완성한다.자연 속에 나무 한 그루 서 있는 단순한 풍경이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바람에 나풀대는 나뭇잎이 있다. 바람이 지나며 알맞게 자리한 나뭇가지를 흔든다. 갑자기 바쁜 작은 흔들림은 그곳에 다람쥐가 놀고 있음이다. 맑은소리가 청량하게 들리면 그곳에 둥지를 튼 새들이 노래하고 있음이다. 잎사귀가 반짝거리고 온통 나무 둘레가 광채가 나는 것은 따뜻한 햇볕이 가득히 비추어지고 있음이다. 줄기 아래 땅속으로 뻗은 뿌리는 튼튼함을 보여주고 줄기에 굴곡진 피부는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때로 제철을 만나면 벌 나비를 부르는 꽃이 피고 다시 제 계절에 들어서면 잘 익은 열매가 풍요의 시절을 보여준다. 한 그루 나무는 그 밖에 우리가 볼 수 없는 더 많은 것을 품고 그 자리에 있다.
특별한 맛을 가지는 유명한 음식은 그 음식 고유의 조리법이 있다. 어떤 재료를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 내는가를 자세히 적어 놓아 그 맛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이 많이 알려진 것의 조리법은 이름만큼 특별한 비법을 감추고 있다. 우리 음식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로 비빔밥이 있다. 아주 다른 의미로 특별한 음식의 이름이다. 배고픈 저녁 별다르게 준비된 요리가 없고 건건한 나물 따위 몇 가지밖에 없을 때 커다란 그릇에 허락되는 재료 모두 넣고 조미료 몇 가지 섞어 잘 비벼주면 우리의 대표 음식 비빔밥이 완성된다. 정해진 조리법도 재료도 없다. 만드는 방법과 재료가 아주 자유분방하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맛은 매우 특별함을 지닌다. 식재료 원래의 맛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때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재료가 가끔은 별것 아닌 재료들이 함께하여 대부분의 사람이 부정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음식의 재미있는 부분이다. 평범한 재료와 평범한 조리법이 가져오는 특별하게 어울리는 밥, 비빔밥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겪게 되는 희로애락의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나쁜 일은 무엇 때문이며 좋은 일은 그것 때문이라고 한 가지를 단정적으로 집어내어 말하는 때가 많다. 새삼 역사의 어떤 사건도 그 뒷얘기 앞 이야기를 다시 찾아 알고 나면 어떤 한 사람이나 한가지 요인으로 벌어지는 사건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의 환경과 영향을 끼치던 사람들과 유행과 지식과 물건들과 소통방법 그리고 사람의 욕심 등이 작용하여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좋은 사건은 좋게 어울리는 결과이고 나쁜 사건은 나쁘게 어울리는 사건이다. 연말을 향하여 달려가는 지금 한해의 결실 또한 지난 시간 속에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서로 섞이고 섞여 지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좋게 어울리는 과일이 익어가고 있는지 바라보는 시선이 떨리고 있다.
알맹이 하나이거나 한 방울 주사약이거나 하는 양약과 달리 한의학의 한약은 몸에 좋다는 여러 가지 약재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모아서 만들어낸다. 때로는 먹으면 독이 되는 독약도 적은 양 집어넣기도 한다. 다른 재료와 어울려 독이 변하여 건강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사람 사는 일에도 어려서 고생은 살아감에 보탬이 된다고 말해진다. 지난 1여 년의 시간 속에 있었던 나쁜 일도 합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상한 전염병에 놀라워하며 움츠러들었지만 다른 일들과 어울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어울림의 미학에 기대를 걸어본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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