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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Bursting(터질 듯한)

가을이 느지막하게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가을 앓이를 심하게 하는 나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는 휴가를 얻어 가을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올해 10월 마지막 주는 거의 지친 초록이 아직도 텃세를 부리고 있다. 11월에 들어서야 서둘러 가을이 축제의 서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소녀 시절 오스트리아의 푸른 초원과 독일의 고색창연한 성을 둘러싸고 있는 농익은 단풍 숲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2011년 10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대장정의 길에 올랐다. 프라하의 찰스 다리 위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드디어 그 꿈이 이루어졌음에 감격해 한참을 울먹였다. 그다음에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철학자의 길’에서 독일 관념 철학의 아버지인 칸트가 하루에 8번씩 이곳을 산책했으며 괴테를 비롯한 헤겔, 야스퍼스, 휠덜린이 산책했던 그 산책로를 걸으며 그들의 숨결에 압도당해 온몸의 세포가 전율하며 덥석 주저앉았던 추억이 있다. 그때가 10월 마지막 주였는데 그 숲속에서 바라본 햇빛은 오색찬란한 잎사귀들을 뚫고 내 가슴을 관통했다. 스쳐 가는 바람은 찬란한 햇빛과 달콤하게 속삭이며 수천수만 가지의 절묘한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가 색채의 향연에 퐁당 빠지게 된 것은! 숲 밖이 아닌 숲속에서 올려다본 햇살!!! 잎사귀마다 고유한 색이 있고 햇빛의 강도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며 찰랑대는 색채! 그리고 그들이 서로 어울려 이루어내는 색채의 조화! 나는 그림으로 그 색채를 토해내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 꿈을 위해 헐떡이고 있다. 그 어떤 누구라도 이 산책로를 걷다 보면 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 장관이었다.  
 
많은 사람이 가을은 쓸쓸하고 외롭고 허무하다고 투정한다. 하지만 나는 가을을 성취와 완성을 재검토하는 대단원의 무대라고 믿는다. 봄에 씨를 뿌려 싹이 나고 여름에 성장하고 가을이면 무르익어 열매를 맺는 계절의 아름다운 순환이 아닌가. 나는 슬프지 않다! 겨울이 되면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을 작고 단단하게 만들어 심층 가장 깊은 곳에 저장한다. 다시 태어날 봄날을 기다리면서 이 가슴 벅찬 가을을 두 팔로 안는다. 
 


지금 내 주위는 이제 겨우 지친 초록이 자리를 내주고 있다. 가슴에 불을 지피고 절정에 오르기까지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았다. 지난 모든 시간은 오늘의 향연을 위한 준비단계였다. 아직 못다 한 꿈이 있다면 저 단풍이 절정을 향해 치닫듯 나 또한 내 꿈을 불태우리라. 당당하고 멋진 나만의 색채를 만들어보리라. 난 어렸을 적에 부풀어 터진 석류가 달린 석류나무를 본 적이 있다. 수정처럼 투명한 붉은 구슬들이 부풀고 부풀어 바깥세상 보고 싶어 더는 참지 못해 터진 가슴 같다고 생각했었다.  
 
프랑스 작가 미셀 투르니에는 ‘예찬’에서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우정은 예찬하는 가운데 생긴다. 현실 세계는 본래 무채색이다. 그 현실에 색깔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눈이고 예찬이다”라고 했다. 삶이 지루하고 고달플 때 그리고 온 세상이 잿빛으로 보일 때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인생의 부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많이 느끼고 감동하며 사느냐에 달려있다. 감동을 하여야 감동을 줄 수 있다. 내 가슴 속에 타고 있는 불빛이 있어야 그 불빛을 전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감동을 하였는가. 가슴 멍한 경험을 했는가. 영감 받은 일이 있는가? 스스로 물어본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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