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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나르키소스의 죽음 이후…

 나르키소스(Narcisus)는 죽었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반해서 그 얼굴을 잡으려다, 또 잡으려다, 실망.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상사병으로 시나브로 죽어간다.  
 
그의 죽음을 누가 가장 슬퍼했을까?
 
그의 어머니 리리오페(Liriope)가 0순위 후보. 그녀는 나르키소스가 어릴 때부터 그의 운명을 걱정한다. 너무 잘 생긴 인간의 숙명…. 오만, 질투, 욕심을 그녀는 너무 잘 안다. 리리오페는 물의 요정, 남편, 즉 나르키소스의 아버지 세피서스(Cephissus)는 강의 신.  
 
나르키소스가 14세가 되자 리리오페는 당시 아테네의 최고의 예언가 시각장애자 테이레시아스(Tiersias)에게 데리고 간다. 테이레시아스가 말한다. “나르키소스가 자신을 알아보는 일이 없으면 (fail to recognize himself) 장수하리라.”  
 


“자신을 알아보다” 알쏭달쏭한 말이다. 결국은 거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면 그 아름다운 모습에 겉잡을 수 없이 빠져 버린다는 예언.  
 
나르키소스가 15세 때 또 하나의 요정이 나타난다. 에코(Echo, 메아리). 그녀는 착하고 말이 많은 여자였다. 제우스가 바람을 필 때 그의 아내 여신 헤라에게 거짓말을 시킨다. 제우스와 그의 상대 요정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헤라는 물론 크게 화를 낸다. 에코에게 말을 빼앗아 버린다. 에코에게는 남이 말을 걸었을 때 마지막 구절을 되풀이하는 능력만 남는다.  
 
사냥 나온 나르키소스를 보고 에코는 한 눈에 반한다. 그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가 화를 내며 말한다. “보기 싫어, 꺼져 버려.” 에코가 답한다. “꺼져 버려.” 서로가 말을 주고받는 것 같지만 대화는 아니다.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말장난이 그들의 운명.
 
나르키소스가 작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황홀하게 아름답다. 그러나 잡을 수 없는 그림자. 그는 서서히 죽어간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에코. 그의 죽음을 가장 슬퍼할 후보 두 번째가 바로 에코. 그러나 에코는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다.  
 
나르키소스의 어머니 리리오페나 그 남자를 연모했던 에코는 그의 죽음을 슬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 때문에 가장 슬피 운 존재는 따로 있다. 19세기 아일랜드의 시인 오스카 와일드, 그의 ‘제자(The Disciple)’라는 제목의 시에 답이 있다.  
 
나르키소스가 죽은 후 그 연못의 물은 짠물이 되었다. 연못이 흘린 눈물 때문. 산의 요정이 연못에게 말한다. “그래 많이 슬프지. 나르키소스가 참 미남이었지.” 연못이 묻는다. “정말 그가 미남이었어요?” “아니, 연못 네가 모르면 누가 아니?”
 
연못이 답한다. “그가 죽어서 슬퍼요. 나는 그의 눈에 비친 멋진 나를 더 이상 볼 수 없잖아요.”
 
연못의 솔직한 대답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눈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빠져서 살고 있다. 상대를 보면서 그 사람을 보지 못한다.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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