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2021년 10월을 보내며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잊혀져야 하는 건가요?”40년 전 가수 이용을 탄생시킨 ‘잊혀진 계절’의 노랫말이다. 2021년 10월의 마지막 밤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떠났다. 한마디 사과나 위로의 언어조차 없이 수상한 비웃음만 남긴 채 말이다. 특별히 지난해 가혹한 쓴맛 이후 이제 겨우 일상 회복을 기대하며 어렵게 맞았던 10월일진대 한마디 변명이나 미안함의 내색은 할 법한데 아무 일없는 양 쓸쓸히 뒹구는 낙엽들의 호들갑만 뒤로한 채 싱겁게 가버렸다.
지난해는 생각조차 싫다. 하루 수만 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안치 못 한 시신들이 컨테이너째 버려지고 뉴욕의 어느 섬이 주검으로 가득했던 지옥 같은 계절들의 행각에 반응 자체가 사치였던 때여서다.
당시 수술 후유증으로 요양 병상에서 6개월 넘게 가족 면회조차 불허된 채 홀로 죽음과 사투를 벌이다 겨우 탈출한 지인이 혼잣말처럼 흘려보낸 말이 “생은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지나지 않더라”다. 옆 병상에서 작으나마 미소로 살아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던 사람이 뒷날 아침 까만 비닐에 둘둘 말려 침상째 끌려나가는 모습을 하도 많이 경험하다 보니 삶과 죽음의 거리가 한치도 안 되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로 온 가족을 불러 유언까지 했으나 자신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셨던지 죽음 문턱에서 건져주셨다고 간증한다.
오늘은 11월 첫 주 토요일이다. 미국에서야 11월은 연중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이 있는 고맙고 귀한 달이다. 그러나 한국의 11월은 그렇지 않다. 시작도 끝도 아닌 것이 10월의 고운 단풍을 윽박질러 낙엽 시킨 뒤 천지사방으로 나뒹굴게 하는 것도 볼썽사나운데 그 흔한 공휴일 빨간 마크조차 하나 달력에 새기지 못하는 능력 없고 밋밋한 달이라고 천대받아 안쓰럽다.
지난번 칼럼 ‘아빠 아브라함’ 게재 후 주위로부터 항의성 인사를 자주 듣는다. 아브라함의 축복 이야기를 하면서 부득불 나이가 들통나 빚은 화근이지만 한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한국에서 산 날보다 많은 세월을 미국에 살면서 불혹의 40대를 지천명의 50,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의 60을 넘긴 것도 감사한데 공자 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른다는 종심의 70이 되었으니 주위 눈치를 안 보고 살아도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마저 생긴다.
사실 요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백 세 인생’의 이애란은 70세는 할 일이 아직 남아, 80세는 아직 쓸만해서, 90세는 알아서 갈 테니재촉하지 말라고 성질을 부리는가 하면 100세가 되어도 좋은 날 좋은 시에 가겠다며 마치 생명의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는 양한다.
성경은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다” 하는가 하면 동양 또한 70세를 고희, 77세를 희수, 80세를 미수. 이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 드물고 쉽지 않다는 뜻으로 둘 다 자연의 순리가 가리키는 대로 건강하고 바르게 살라는 권면 같다. 그렇다. 인고의 삶을 강요하는 장수도 중요하지만 죽음 이후 우리가 가야 할 저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오늘도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이 복된 인생이 아닐까?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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