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사람값 하며 사는 삶
사람값은 사람이 매긴다. 다른 사람이 매긴다. 삶의 무게는 질량으로 잴 수 없고 사람값은 숫자로 매기기 어렵다. 살아 생전보다 사후에 매겨지는 점수가 더 정확한 수치인지 모른다. 사람값 하며 살기는 참 어렵다. 살아 생전에 붙은 화려한 수식어보다 죽은 뒤 남기는 몇 줄의 평판이 어쩌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인지 모른다.지역사회에 알게 모르게 봉사하던 두 분의 죽음이 생각난다. 한 분은 이름도 얼굴도 없이,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연장자 아파트에서 가난하게 지내던 할머니다. 자기 처지를 한탄하지 않았고, 황금 송아지 키우던 과거를 내세우지 않았으며, 손수 키운 채소로 맛난 김치 만들어 이웃과 다정하게 나눠 먹었다. 일요일엔 교회 밴 타고 오는데 텃밭에서 갓 뽑은 채소를 봉지에 담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셨다. 나도 몇 번 얻어먹는 행운을 누렸는데 부추나 깻잎은 일렬로 줄세워 깨끗이 손질해 씻어주셔서 요리하기 편했다.
다른 한 분은 지식과 교양, 품위와 인격을 모두 갖춘 분이다. 전문직 남편 덕분에 적당한 부를 누렸고 두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냈으며 교회에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지 못했으며 알게 모르게 지역 사회에 봉사한 분이다.
죽음은 한 인간의 민낯을 빼지도 더하지도 않고 진솔하게 그려낸다.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통해 했다. 굽은 손으로 플라스틱 봉지에 담긴 싱싱한 채소를 건네주던 할머니의 다정한 미소를 그리워하고 그 분의 일생을 추모했다.
다른 한 분의 죽음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배우고 교양 있는 사람들은 우아한 단어로 추모하고 애도했다. 나도 그 부류에 속했다. 하지만 덜 가진 사람, 적게 배운 사람들의 태도는 냉담했다. “그 사람 잘난 체 하잖아요. 겉다르고 속 달라요. 도와주는게 아니라 불쌍해서 그러는 거죠.”
깜짝 놀랐다. ‘동물적 감각’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습관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반응 시간이 빠르고 진솔하다. 동물적 감각은 이성이 지닌 위선의 탈 속에 숨은 인간의 속내와 진실의 실체를 보게 한다.
위선자는 겉으로만 착한 체하는 사람이다. 지식이 인격과 단절될 때, 가슴이 얼음처럼 차가울 때 베푸는 동정은 사랑이 아니라 기만이다. 자애로운 동정심은 ‘빈민 구제’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일 뿐이다.
사람들은 가슴으로 말한다. 가슴은 없는 말을 꾸며대지 않는다. 보이는 대로 말하고 느낀 대로 판단하고 내키는 대로 답한다.
정성 담아 사람 대하고 동정 대신 사랑으로 섬기면 죽어서도 사람값을 하지 않을까. 호랑이가 아니라서 죽어 남길 가죽 없고, 이름 기억할 명성은커녕 남길 유산 조차 없으니 그냥 허공에 떠돌다 흩어질 이름 석 자 나홀로 불러 볼 뿐이다.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해도 외로워 말고,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고, 내 생의 점수가 빵점이라 해도 후회하지 말고, 위선이 아닌 내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가슴 뜨겁게 살아온 날들과 남은 시간들을 위해 건배!
이기희 / Q7 파인아트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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