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만성제(萬聖祭)
핼러윈은 가톨릭에서 기인된 특유의 풍습이다. 망자(亡者)를 기리기 위한 축제로 11월 1일 돌아가신 모든 성인들의 축일인 만성절(萬聖節)의 전야제(前夜祭)로 만성제(萬聖祭)라고도 불린다. 오래 전 영국에서 유래하여 전 세계적으로 퍼졌으나 오히려 유럽보다는 미국에서 극성스러운 상업적 발생으로 미국식 핼러윈이 이제는 동양까지 확산되었다. 모든 축일에는 경하스러운 일이 주제가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공포라는 새로운 주제도 놀고 먹고 마시는 데에는 특이한 맛으로 창조되었다. 미국의 무료한 농촌에서는 10월 초부터 무려 1달간 축제를 벌이는 곳도 많다. 물론 한국도 돼지머리를 놓고 미신이라기보다는 반 오락 삼아 제사를 지내듯 여기서는 해골바가지와 도낏자루를 앞에 놓고 술과 음식으로 재미 삼아 한다.
도시에서는 이렇게 며칠 동안은 할 수는 없고 악마로 분장한 아이들을 앞장 세워 가가호호 문을 두드리며 사탕 공장에서 창안한 듯한 "Trick or Treat!!"이라고 "맛난 것 안 주면 재미 없다"는 식으로 공갈 협박해 이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는 가정과 한바탕 즐긴다. 특히 시카고 지역은 이맘때면 해가 일찍 떨어져 환한 현관 전등 밑에서 늙은 할미 할아비와 아이들이 서로 엉켜 실랑이 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흐뭇해진다. 악마도 웃음을 선사하면 귀여울 때가 있구나 싶다. 미국에서는 사탕의 4분의 1이 이날 전부 소비되며 핼러윈 분장을 파는 전문적인 매장도 많다. 시카고 중심가의 대형 문구점 Office Max는 석 달 전 문을 닫고 분장 체인점으로 잠시 변신하였다. 분장 장사는 딱 석 달 동안만 하여도 일 년 치를 벌어 각 지방에도 성업 중이다. 덩달아 호텔은 이를 주제로 한 고급 파티에 열을 올리며 예약도 힘들다.
한국도 요즘은 미국의 풍습인 밸런타인 데이와 핼러윈 데이에 열을 올리는 것 같다. 한술 더 떠 무슨 빼빼로 데이도 생긴 모양인데 모두 상업성 창의력 하나는 수준급으로 K 문화가 왜 발전했는지 이해가 갈 만하다. 어른들은 해외의 풍습까지 수입할 필요가 있으냐며 못마땅해 하나 젊은이들은 힘든 세상 이렇게라도 웃어야지 너무한 거 아니냐다. 글로벌 시대에 좋은 게 좋다고도 할 수 있으며 오징어 게임도 미국 대학가에서도 하는데 너무 핀잔만 줄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몸에 구렁이 지나가는 문신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제는 더 이상 귀신 놀이만큼은 안 했으면 한다. 텔레비전을 보면 국정 감사장인지 시간제 말싸움인지 무슨 주술 같은 서사시를 먼 산 보듯 실컷 나누고 서로가 진짜 도깨비 같다고 칭찬한다.
금년 핼러윈은 그전과 같이 아이들이 우리 집에 올는지 모르겠다. 매년 우리 집은 사탕을 너무 주어 먼 동네까지 소문나 수시로 벨을 눌러 나눠 주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조금은 걱정이다. 작년에는 도통 문을 안 두들겨 일부러 문까지 열어 놓고 현관 등을 밝혔는데도 몇 명만 다녀가 서운했다. 금년은 그래도 더 나아지려니 기대한다. 얼굴이야 굳이 도깨비 분장을 안 해도 자동적으로 복면이 돼 있을 테니 큰돈 쓸 일은 없을 것이다.
핼러윈이 끝나면 바로 서머타임은 해제되고 밤은 더욱 깊어져 긴긴 겨울로 접어든다. 눈이 일찍이 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11월 말경 추수 감사절이 오면서 곧장 성탄 분위기다. 예년 같으면 크리스마스트리가 서둘러 장식되고 오색 전구가 나무를 휘감을 것이다. 멀리 사는 손주 자식들이 찾아와 이브날 같이 둘러앉아 선물을 뜯으며 배불리 먹다 보면 숨넘어가는 제야의 시계를 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새해로 넘어갈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이런 통상적인 시간표가 올해는 하나도 거침없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hanprise@gmail.com)
한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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