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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큰 걱정이 작은 근심을 덮는다. 큰 일이 터지면 작은 근심은 사라진다.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죽고 사는 일에는 밀린다. 근심의 근원은 소유와 욕망, 죽음에 대한 공포다. 욕망은 끝이 없다. 먼지처럼 몸에 달라붙은 욕망의 찌꺼기들은 세월이 갈수록 두터운 겨울 코트처럼 무거워진다. 내려 놓으려 해도 근심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걱정, 근심도 순서가 있다. 죽고 사는 일이 생기면 작은 염려가 헛수고다. 선배 한 분이 생을 마감했다. 모진 병으로 허망하게 떠났다. 불치의 병을 선고 받고 고통으로 투병하며 사는 게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상하고 이웃 섬기고 하나님 믿고 의지하며 무엇보다 건강을 살뜰하게 챙기던 분이다. 어머니 담근 김치 맛있다며 몸에 안 좋은 흰밥 대신 물 마시며 먹고 삶은 계란도 흰자만 드셨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을 묵상하면서도 지난 일들은 괴로워하고 마주할 오늘을 근심하며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내일을 미리 염려한다. 내 근심과 걱정은 과거집착형이고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지속형이다. 하루도 걱정 근심 내려 놓고 산 적이 없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김수영의 시 ‘절망’ 중에서.
 
구원과 평강을 꿈꾸지만 후회도 반성도 없이 근심 걱정에 매달려 허덕이며 산다. 새벽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이승인지 저승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환상처럼 스쳐가는, 의식과 무의식이 엇갈리는, 몇 초의 희미한 이미지가 나의 하루를 지배한다. 환상과 기쁨도 있지만 걱정과 근심 거리가 대부분이다.    
 
안반낙도(安貧樂道)로 근심 걱정 없이 사는 무수옹(無愁翁)의 길은 요원하다. 탐심을 버리면 피곤한 삶이 덜 고단해진다. 버릴 수 없는 것들은 버리면 사는 게 가벼워진다. 버티려고 발버둥칠수록 삶의 실타래는 더 꼬인다. 무수옹으로 걱정 근심에서 벗어나는 길은 사유와 집착의 욕망에서 해방 되는 길이다.  
 
욕망의 눈을 감으며 고단함이 덜어진다. 잘 늙는다는 것은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얻는 것이다. 하늘이 내려 준 복과 고통을 인간이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품위 있게 산다는 것은 한탄과 넋두리, 근심 걱정 대신 처지와 분수를 아는 일이다. 불가에서는 탐심, 진심, 치심의 삼독심(三毒心)을 경계한다.    
 
세상의 모든 것, 좋아하는 것을 다 가지려는 것은 탐심이다. 진심(嗔心)은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생기는 원망과 불만, 노여움을 말한다. 치심(癡心)은 어리석음이다. 착각에서 나오는 자만과 오만 나태함이 묻어난 의심이다. 삼독심은 분별의 눈을 멀게 하고 물욕과 애착으로 마음을 병들게 해 걱정 근심의 늪에 빠지게 한다. 천복(天福)을 내리는 것은 하늘이지만 받는 자는 인간이다.  

이기희 / Q7 파인아트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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