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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유엔 북한 제재와 미국의 역할

지난달 칼럼에서 중국의 강경한 입장 표명으로 북한이 함부로 도발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주목하고, 곤경에 처한 북한이 9월 최고인민회의 이후 남한에 손을 내밀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정말 그렇게 되었다.

9월 2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남북관계가 회복되고 새로운 단계로 발전해 나가는가”는 남한 당국의 태도에 달렸다고 했고, 남북 통신연락선을 이달 초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신중한 정지 작업이 있었다. 9월 24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남한이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바꾼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이 “좋은 발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후에 일련의 미사일 실험이 있었는데, 국제 사회, 특히 중국의 부정적인 반응을 유발하지 않게 조심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대화에 열려있다고 시사하면서도 관계 회복을 위해선 남한이 “남북선언을 무게 있게 대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8년 남북은 판문점 및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경제협력을 통한 대북 지원 등 과거 모든 합의를 이행하기로 했었다. 남북 간 ‘밀월’은 곧 깨졌는데, 남한의 지원이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에 해당할 수 있어서였다.

이번엔 다를 수 있었다. 호주 사례 때문이다. 지난달 16일 호주가 미국·영국의 협력으로 핵 추진 잠수함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어느 시점엔가 핵물질이나 원자로 혹은 둘 다 호주에 이전돼야 한다는 뜻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남한이 호주 예를 들며 미국을 설득한다면, 북한에 대한 강경 입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제재 완화까지는 어렵더라도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거나 어느 정도 재량권을 가질 수도 있었다. 문 대통령이 고대하는 남북 협력사업을 시작하고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재 완화의 기회는 사라졌다. 김 위원장의 연설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핵보유국이 아닌 호주가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을 보유할 수 있는데 왜 북한·이란 등은 안 되는가”라며 “조속히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 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이제 제재 완화를 하면 중국의 압력에 대한 굴복으로 보이거나, 호주와 북한 사례가 유사하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됐다. 미국으로선 절대 용납하지 않는 일이다. 중국이 그저 경솔했던 걸까. 아니면 대단히 영리했던 걸까.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할 것을 염려해 교묘한 수법으로 남북 간 화해 분위기에 제동을 걸려 한 걸까.

북한의 내부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다. 7월에 이미 부족했던 식량 공급은 홍수와 흉작으로 더욱 열악해졌을 것이다. 북한 관료들이 자국에 주재했던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요원들에게 북한을 후원한 국가들을 알려달라고 이미 요청했다는데, 이들 국가가 북한의 직접 지원에 나설지 미지수다.

중국이 대북 지원을 늘릴 가능성도 적다. 남한의 원조를 받아 문제를 해결하려던 북한의 노력도 저지당했다.

지금 현실적으로 북한에 원조를 제공할 만한 국가는 둘밖에 없다. 하나는 일본이다. 납북 일본인 송환과 국교 정상화가 되면 북한에 배상금을 지불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협상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머지는 미국인데, 북한 내 강경파들이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의 굴욕을 상기시키면서 맹렬히 반대할 것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연설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제안을 조롱한 일도 있다. 북한 정권으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정권 안정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경제가 나빠진다면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 아니면 어디에 의지할 수 있겠나.


존 에버라드 /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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