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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일상에는 역사의 질곡이 흐른다

체코 영화계 거장 얀 흐르베이크 감독 대표작

‘나의 아름다운 비밀’(Divided We Fall, 2000). 독일 점령기의 암울했던 체코 역사의 어두웠던 단면을 선악 구분의 틀에서 벗어나 재치와 코믹함으로 무겁지 않게 표현해 낸다. [Amazon Studios]

‘나의 아름다운 비밀’(Divided We Fall, 2000). 독일 점령기의 암울했던 체코 역사의 어두웠던 단면을 선악 구분의 틀에서 벗어나 재치와 코믹함으로 무겁지 않게 표현해 낸다. [Amazon Studios]

‘뷰티 인 트러블’(Beauty in Trouble, 2008). 남편과 또 다른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마르셀라의 사랑, 섹스, 미래에 대한 갈등이 솔직하고도 익살스럽게 표현된다. Ovid TV에서 스트리밍되고 있다. [Menemsha Film]

‘뷰티 인 트러블’(Beauty in Trouble, 2008). 남편과 또 다른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마르셀라의 사랑, 섹스, 미래에 대한 갈등이 솔직하고도 익살스럽게 표현된다. Ovid TV에서 스트리밍되고 있다. [Menemsha Film]

체코도 우리만큼 역사의 질곡과 단절을 경험한 나라다. 1990년대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가 분리되면서 각기의 독립영화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체코공화국은 동유럽 국가 중 영화 산업이 가장 강세를 보인 나라로 부상했다.

체코는 긴 역사의 한 켠에서 지독한 공산주의의 부조리를 절절히 경험했던 나라,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나라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통해 체코의 일면을 접했지만, 체코의 역사와 문화가 여전히 먼 나라처럼 낯설게 느껴진다면 오늘 소개하는 얀 흐르베이크(Jan Hrebejk)의 두 편의 영화는 그들의 일상과 역사에 성큼 다가서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흐르베이크는 체코에서 가장 성공한 대표 영화감독이면서 연극 연출가이다. 그의 필모그래프는 체코 사람의 일상에서 시작, 체코사의 어두운 단면을 들추어 역사적 깊이에 접근하는 영화들로 채워져 있다. 역사가 묻어나는 의복, 생활상과 그 시대의 흔적들을 포착한 작품들로 즐비하다.

나치 치하, 한 여인이 임신했다
나의 아름다운 비밀(Divided We Fall)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된 1943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가 배경이다. 자녀가 없는 불임 부부 조셉과 마리가 사는 마을에 쫓기는 신세인 유대인 청년 데이비드가 숨어든다. 이들 부부의 친구이며 나치의 부역자이기도 한 호스트가 주선하여 조셉은 데이비드를 자신의 집에 숨겨준다. 이웃 프란타는 과거 나치에게 부역했던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마치 레지스탕스처럼 행동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데이비드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마리가 임신을 한다. 임신이 불가능한 마리에게 보내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다.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체코에는 독일군 대신 소련군이 진주하고 있다. 곧 아이의 출산이 다가온다. 체코인과 나치 부역자뿐만 아니라 러시아 군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어날 이 아이는 누구의 아이일까.

영화는 이렇게 각 캐릭터들이 선과 악의 경계에서 구분이 모호하다. 나치와 유대인 중심의 서사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독일 점령기의 암울했던 체코 역사의 한 단면을 선악 구분의 틀에서 벗어나 틈틈이 곁들여진 재치와 코믹함으로 어두웠던 체코 역사를 무겁지 않게 표현해 낸다. 나치 식민시대의 아픔을 살아낸 풍경에는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교훈마저 있다.

데이비드가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상황의 긴장감이 유지되면서도 슬픔을 기쁨으로 치장하고 상처로 얼룩진 전쟁의 와중에서도 위트 속에 숨어 있는 애잔한 메시지를 전한다. 체코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이었던 시대를 오히려 해학적으로 풀어낸 감독의 여유가 느껴진다. 황당하고 엉뚱한 극적 상상력이 동원된 영화, 그러나 이 작품은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

체코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체코 라이온스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녀 주연상, 각본상을 수상했고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올랐다.

사랑과 돈의 안락함 사이에서
뷰티 인 트러블(Beauty In Trouble)


한 젊은 여성의 사랑 행각, 그리고 그녀의 삶을 솔직하게 표현한 ‘뷰티 인 트러블’은 변변치 않은 남편을 둔 젊은 여인이 부유하지만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 사랑보다는 돈이 주는 안락함에 익숙해져 가는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여주인공 마르셀라의 사랑, 섹스 그리고 미래 대한 갈등이 익살과 솔직함으로 표현된다.

프라하에 일어난 큰 홍수로 재산 피해를 본마르셀라와야르다 부부는 다툼이 잦지만 사소한 갈등은 섹스로 풀고 산다. 그러다 자동차 수리공 야르다가 도난 차량에 연루되어 수감된다. 마르셀라는 경찰서에 면회를 갖다 자동차 주인 베네스를 만난다. 체코 사람이지만 이탈리아에 랜치를 소유하고 있는 신사 베네스는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마르셀라에게 자신의 아파트 키를 건넨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데이트를 시작한다.

얼마 후 야르다가 출감한다. 마르셀라는 남편과의 옛정을 못 잊어 다시 그와 관계를 맺게 되고 이를 알아차린 베네스는 배반감에 마르셀라의 뺨을 후려친다. 순간 마르셀라는베네스의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그와 미래를 함께 하기로 마음먹는다.

대부분의 체코 영화가 그렇듯, 두 작품 모두 영상미가 수려하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도시, ‘동유럽의 파리’라 불리는 프라하의 거리가 왠지 낯설지 않다. 1989년 민주주의를 향한 체코인들의 열망으로 이뤄낸 비폭력 ‘벨벳 혁명’의 흔적들이 거리 곳곳에 묻어 있다. 그 자체로도 감상하기 벅찬 애처로운 스토리들을 담고 있는 도시 프라하에서 펼쳐지는 흐르베이크 감독의 두 편의 영화는 체코 사람들의 서정과 그들만의 오리지낼리티를 느껴보기에 충분한 작품이라 여겨진다.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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