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한글날 생각하는 자랑스러운 한글
문자의 본질은 어떤 모양을 어떻게 읽자고 약속한 기호체계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의 분화를 초래했고 유전적인 진보 속에 혀와 성대 근육이 발달하면서 의사전달을 위한 필수 기호체계인 문자들을 수없이 생성, 전파, 기록해 왔다. 따라서 문자는 한 민족의 삶과 애환을 담은 표현물로 그 나라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문자에 대한 각별한 이해와 공유, 도움이 필요하다.흔히 한글을 말할 때 독창성, 과학성, 실용성을 거론한다. 여기서 과학성이란 사실(fact) 그 자체가 뒷받침되고 논리적인 인식으로 매개되어 있거나 원리적으로 완벽한 체계가 확립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영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어는 생성원리가 불분명하고 구성원칙도 체계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아 과학성을 지녔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글은 다르다. 한글은 그 어떤 언어나 문자를 모방하거나 꾸며냄이 없는 독창적인 발명품인 동시 창제자의 제정 이유가 명확하고 글자 체계의 구성원칙이 완벽하게 정의된 과학적인 문자다.
오늘은 1443년(세종 25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뒤 만천하에 공포한 날을 기념하는 한글날이다. 조부 이성계가 1392년 조선을 개국했으니 겨우 50년 역사, 신생국으로 아직 나라의 기틀이 제대로 자리잡혔다고 보기는 어려운 시기, 세종대왕이 그 많은 할 일 중 특별히 한글 창제에 사활을 걸었음은 높이 평가됨이 마땅하다. 무엇보다 최만리 같은 위인이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며 기를 쓰고 반대했고 전국의 유생들이 상소문을 올리는 가운데 탄생한 한글의 우수성을 뽑아보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한글은 세종대왕의 경천애민사상의 발로다.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문)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함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이 여겨 새로 28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평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왕이 서민 대중의 편리함을 헤아려 양반들의 극한 반대 속에 문자를 만든 예가 있을까? 오히려 백성을 우민화시켜 철권통치를 공고히 하였다는 기록만 난무하지 않는가? 이 모습은 종교도 마찬가지로 가톨릭은 최근까지 평신도가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을 금했다. 따라서 세종이 단지 국민의 편리를 위해 안질까지 앓아가며 새로 28자를 만든 것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한 표징이 아닐까.
둘째 한글은 독창성과 과학성을 두루 갖춘 창조품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의하면,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모음은 세상 만물의 근간인 천(하늘), 지(땅), 인(사람)에서 본떴다고 밝히고 있다. 즉 자음은 모든 소리의 기본인 5행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금닛소리글자(ㄱ), 혓소리 글자(ㄴ), 입술소리 글자(ㅁ), 잇소리 글자(ㅅ), 목청소리 글자(ㅇ)를 기본으로, 모음은 둥근 하늘의 모습을 닮은 아래아(.), 평평한 땅의 모습(ㅡ), 서 있는 사람의 모습(ㅣ)을 본떴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한글은 사물의 형상만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우주관을 포함한 음운학적 원리가 글꼴 속에 있다.
그리고 그 글꼴들은 마치 원자와 전자가 만나 물질의 기본을 이루는 것처럼 오행 사상의 자음에 천·지·인을 상상하는 모음이 상합된 문자 과학의 정수를 지닌 자랑할만한 만고 유산이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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