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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편지를 기다리며 편지를 씁니다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립니다. 문득 친구, 아니,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아직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늘이 가라앉은 날이면 더욱 간절합니다. 편지라도 받아 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편지함을 열었습니다. 또 쓸데없는 종이들만 한 묶음이었습니다.

이젠 고지서도 몇장 안 되는 나의 우체통! 전화가 울립니다. 선생님?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원고청탁? 순간 나의 가슴을 쿡 찔러 보아야 했습니다. 내가 아직도 어디에 쓸모가 있었던가? 그동안 나태해진 나를 깨우느라 긁적거려 두었던 글을 모아 두 번째 자그마한 수필집(‘뜰안에 된장’)을 마지막 글이라 생각하며 묶었습니다. 거기에 너무나도 과분한 칭찬의 추천사를 써주신 선생님의 목소리였습니다.

요즘 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는 더없는 기쁨입니다. 저는 원래 사람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내 자신이 좀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변덕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사람에 대한 실망인지, 연락하는 사람도 뜸 해졌습니다. 하여 나를 다시 들여다볼 시간을 가지겠다 하면서도 시간이 없다, 기운도 없다, 사람도 만나기 싫다 하니, 나 자신도 어쩌자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옛 친구들, 운명같이 만난 내 남편, 아이들과 가족, 그 테두리 안에서 오그작거리며 긴 세월을 살아왔는데 지금 와서는 세월이 너무도 빨리 가버림이 야속하고 아쉽다는 말을 종종 맞장구치는 할매가 되었습니다. 하여 더 늦기 전에 귀한 사람들을 더 만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것 또한 상당한 축복과 행운이 아닐까요?

오늘은 나 자신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나이테란 놈이 나를 칭칭 감아 안으며 까불지 말고 네 분수나 알고 행동하라고 호통을 치는 겁니다. 그래? 내가 어떻길래? 갑자기 제 모습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옆을 돌아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나같이 나이테를 겹겹이 두른 굵직굵직한 나무들이 우뚝우뚝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 손으로 키워 저와 함께 나이를 먹어버린 나무들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저 친구들은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살아온 가족 같은 이웃이었습니다. 아, 나는 저 친구들과 어떤 정을 나누었던가? 얼핏 내 친구들과 또는 내 친척들과는 얼마나 자주 소식을 전하며 살았던가? 참 메마르게 살았다는 생각이 왈칵 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과 그리움 속에 존재하는 인간인 것을 잘 알면서도 멀어서, 시간이 없어서, 나이가 들어서라는 핑계를 나열하며 지나쳐 버렸습니다.



원고를 쓰겠노라고 대답을 덜컥해놓고는, 내가 미쳤나? 대책도 없이 무슨 깡다귀로? 이 나이에 어떤 스트레스를 받으려고? 한참을 혼자서 끙끙댔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귀중합니다. 그립다, 그립다, 투정만 할 것이 아니지요. 특히 오늘을 충실히 살자고 다짐하는 요즘 우선 내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환영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자문자답을 했습니다. 운동, 수다, 유희(Dance) 외에도 때로는 그리움을 찾아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마음과 마음에 글이 오갈 때, 이는 나만의 기쁨이 아니라 상대방에 기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을 쓰며 느끼고 배워가지만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재주는 아무도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사람도 꽃도 음식도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달라,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듯이 어찌 내가 남을 나의 기준 위에 나란히 서게 하는 욕심을 부리겠습니까? 그렇기에 더 신기하고 재미도 있습니다. 행운과 기적은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다 하던가요? 기적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운 사람들을 찾아 하고 싶었던 말을 털어놓고 또는 나 자신에게라도 편지를 보내 본다면 언제고는 기대하지도 않던 답이 오지 않을까요? 마치 내 마음속에 내 엄마가 보내주시는 사랑의 편지처럼!!


남순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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