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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

일주일 예정의 한국 방문길, 일정이 하나 어그러져 하루의 여유가 생긴다. 남는 시간을 나만을 위해 오롯이 쓸 작정이다. 내일, 추석 하루 전 날 인천 공항에서 출국이다. 어딘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직접 공항으로 갈 요량으로 공주 집에서 아예 짐을 싸가지고 나온다. 추석 연휴 교통 체증을 피하기 위해서는 귀향길의 반대 방향, 서울로 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서해안 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대전에서 당진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공주에서 서해안까지 한 시간 반 거리다. 꽃지 해수욕장, 간월암, 수덕사 등은 여러 번 가 본 곳이다. 이번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찾는다.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당진의 왜목 마을로 향한다. 서해 바다에서 해돋이를 본다는 생각이 잠시 낯설다. 그러나 어딘들 해가 뜨고 지지 않으랴. 동쪽이니 서쪽이니 다 상대적인 것을. 왜목, 왜가리 목 비슷하게 생긴 지형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점심 무렵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꽤 많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 그리고 가끔씩 그 젊은 부부를 따라온 부모나 시부모들이 보인다. 명절 전 날 고향에 내려온 젊은이들도 있을 터. 생기가 도는 시골 바닷가 마을이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방을 잡으려다가 주인이 너무 불친절해서 차를 타고 나온다. 바다 대신 넓은 들이 보이는 모텔에 투숙한다. 이 모텔은 사람 얼굴을 볼 필요도 없다. 무인텔은 아니지만 목소리로만 소통을 한다. 개구멍 같은 창구로 돈을 넣고 키를 받는다. 혼자서 하룻밤 지내기에는 그런대로 편안한 구조.

저녁 때 바닷가로 나간다. 조개구이, 대하라는 어려운 이름으로 파는 왕새우, 그리고 삼겹살 등 음식은 푸짐하다. 그러나 여럿이 같이 먹어야 하는 요리들. 혼자서는 먹을 것이 변변치 않다. 그래도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 자리를 잡는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다. 동남아 출신 키 작은 웨이트리스가 한국말로 주문을 받는다. 물회 한 그릇. 옆 테이블에 50대 후반 시골 부부가 추석을 쇠러 돌아온 20대 아들 부부와 소주 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주는 잔을 덥석덥석 잘도 받는다.

해는 바다 쪽으로 지지 않는다. 반대쪽 들판 너머 해가 진다. 아마도 그 들판도 바다였으리라. 오래 전 바다를 막아 농지를 만든 곳이었던 듯. 내가 하루 밤을 지낼 모텔 쪽으로 걸어오니 삼태기 만한 붉은 해가 전선에 걸려있다.

낯선 곳에서의 하루 그렇게 지나간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나를 떠난 사람들이 떠오른다. 만남도 이별도 다 인연의 맥락으로 보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어떤 이별은 도무지 가닥을 잡을 수 없다. ‘왜?’ 이 한마디로 남아서 아스라한 추억으로 빛이 바래 간다.

아침 5시 반, 바닷가로 간다. 아무도 없다. 한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 뿌연 바닷가로 나온다. 그리고 바닷가에 붉은 기운이 몰려온다. 수평선 한 곳, 돛단배 하나, 그 너머로 잘 읽은 토마토가 툭 터지듯 해가 떠오른다.

낯선 곳에서 하룻밤, 99.9% 묵언 수행의 시간이었다.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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