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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배우며]저승 사자와 전능 자

1954년 린덴 파리 약을 실수로 삼키고 죽음의 문턱에서 오락 가락 할 때 저승사자를 보았다.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저승사자, 등에 진 괴나리봇짐에는 여분의 미투리가 한 켜래 보였다. 나를 데리고 멀고 먼 저승길을 갈 준비였다. 저승 사자는 갓 그늘 밑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승 사자는 그렇게 좀 멀리 보이다 좀 가까이 보였다. 나는 느꼈다. 저승 사자가 나를 저승으로 데려 갈까 말까 하고 망설이고 있다고.

난리 후 산골에서 서울 와서 낮에는 시청의 소독수로 일 할 때, 트럭 위의 드럼통에서 린덴 파리 약을 땅 바닥에 있는 분무기에 넣으려고 드럼 통속과 연결된 땅에 있는 호스 끝자락에 입을 대고 빨았다. 호스를 타고 내려온 파리 약이 실수로 울컥 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세상이 빙빙 돌고, 정신 차릴 수가 없었다. 비틀거리며 집에 갔다. 먹은 음식을 토했다. 누워있는 나의 의식이 깜빡일 때 저승 사자가 보였다.

나의 저승사자의 이미지는 충청도 산골에서 보낸 유년기의 경험에서 생겼다. 귀신 우는 소리를 들으려 상여 초막에 간 적도 있다. 밭두렁에 가마니 위의 행려병자 송장의 원귀가 비 오는 밤이면 통곡한다는 소리. 비 오는 밤에 초등학교 변소를 지나올 때 똥통에 빠져 죽은 여자애의 우는 소리에, 찬송가를 불렀더니 우는 소리가 사라졌다는 소문, 귀신이 덤빌 때 십자가를 내밀면 귀신은 도망 간다고 했다.

선생님의 귀신 이야기에 괴성을 지르던 여자애들, 묏자리를 잘 써 죽어서 명계의 왕이 된 이야기, 제삿밥을 못 얻어 먹어 허기진 원귀의 이야기, 삼대 독자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지관이 조상의 묏자리가 잘못되었다고 무덤을 파보니 뱀이 해골을 감고 있더라는 이야기, 옆집 처녀를 연모하다 죽은 총각의 상여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그 처녀의 옷을 상여 위에 걸었더니 상여가 땅에서 떨어져 갔다는 이야기, 누구나 죽을 때는 저승 사자가 데리러 온다는 이야기.

송장 떠내려간다고 소리치는 애들 따라 홍수로 물이 불은 강둑에서 본 여자 시체, 풀어 헤쳐진 검은 머리가 얼굴을 덮은 걸 보고 처녀라고 했다. 남자를 못 안아본 원한이 죽어서도 남자 안을 때의 자세로 하늘을 향해서 가슴을 열고 팔을 벌렸다고, 쯧쯧 남자를 못 안아 보고 가는 처녀원한이 얼마나 크길래! 그렇게 한숨짓는 여인네도 있었다.

혼자 집을 지키는 밤, 문고리가 딸그락거리는 소리, 천장에 빠스락 거리는 소리, 아무도 없는데 마루가 삐거덕거리는 소리, 바람도 없는데 호롱불꽃이 흔들릴 때, 귀신이 지나가고 오는 흔적이 아닐까 오싹할 때가 있었다.

가을비 추적한 으스름에 멀리서 들리는 징 징 울리는 징 소리 속에 아기를 두고 떠난 애기엄마 원귀의 신음소리가 섞여 화음이 되었다. 마당 저쪽 떨어진 뒷간엔 똥간 귀신, 밤중에 가기가 무서워 누군가 문을 열고 지켜 주어야 했다.

미국에 와서 50년 넘게 살며 장례식에서 죽은 사람 얼굴도 보고, 죽어 영혼이 어두운 굴을 지나 밝은 세상에 도착했다 돌아온 임사체험 수기도 읽고, 죽음 후에 가는 하늘나라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죽음의 문턱에서 본 저승사자는 내가 어려서 경험한 한국 산골의 귀신문화의 경험이 만든 지나간 것이고, 지금은 새 경험들이 새 이미지를 만들 것이다.

“사람 속에 만들어진 이미지는 그것이 초인이든 신이든 현실과 사실 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인민 사원의 짐 존스 목사가 한 말이다. 캘리포니아에서 1960 년데 짐 존스 목사는 전능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기적들을 연출했다. 그 중에 하나, 군중 속에서 들린 탕 총소리, 가슴에 흐르는 피를 안고 쓰러진 그는 범인을 잡으려는 술렁이는 주위 사람들을 조용하게 하고, 가슴에서 뺀 총알을 보여주고, 총알 박혔던 가슴 상처가 멀쩡하게 치유되었다고 보여주었다.

수많은 군중들은 총에 맞아도 죽지 않은 그의 초능력을 직접 본 경험을 증언했다. 그의 이미지는 하나님 가까이 높아지면서, 진실과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그들은 타락된 미국을 떠나 가이아나 밀림 속에 저들만의 지상천국 존스타운을 만들어 이주했다. 그를 따라갔던 추종자 900명은 1978년 집단 자살로 끝을 맺었다. 그 사건은 미국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집단 자살한 사건이라고 한다. 진실의 외면이 정신병의 근원이라고 ‘좁은 길’의 저자 스캍-팩은 말한다.


김홍영 / 전 오하이오 영스타운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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