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콩트] 영어는 나의 원수

경식은 아침부터 걱정거리가 생겨 마음이 안정이 안 되었다. 오늘 아들 마크의 담임 선생과 면담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만나면 한국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듣고 말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라면 심한 앨러지 현상이 나타나는 경식으로서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저러나 도대체 마크 담임 선생이 우리를 왜 만나자고 한 거야”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마크가 옆에 애를 주먹으로 때렸대요. 자기를 동양 사람이라고 깔봐서 손으로 살짝 얼굴을 쳤는데 그 부모가 선생에 고자질 해 난리를 쳤다나 봐요.”

좌우지간 오늘 담임을 만나서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여간 걱정이 안 되었다. 무조건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것이 좋은 방법이지만 빌어도 무언가 말을 하면서 빌어야지 덮어 놓고 벙어리처럼 손짓 발짓 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노릇이다.

약속시간이 되어 경식은 조그만 상담실에서 담임을 만났다. 담임은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여자였다. 그녀는 금테 안경 너머로 경식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보았는데 못 알아들을 때는 친절하게 두 번 세 번 반복하며 물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경식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제 무언가 한마디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얼굴만 달아올랐다.

‘미안합니다. 한번만 봐주세요.’ ‘미안합니다’는 ‘I am sorry’이고 ‘한번만 봐 주세요’를 뭐라 하지. 한번은 ‘one time’이고, 봐 주세요?

드디어 경식은 사형선고 받은 죄수처럼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I am sorry. Please one time look at me. Please look at me.” 그의 애원하는 목소리에 담임은 어리둥절했다. “I am looking at you.” 지금 마주 보고 앉아 있는데 뭘 또 자꾸 봐 달라고 하는 건지? 잘 생긴 얼굴도 아닌데. 자꾸 쳐다 봐 달라니. 난감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다. 담임은 다시는 아들이 교내에서 폭력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사인을 받고는 그를 돌려보내려 했다.

그녀는 일어서며 “Have a nice day!”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했다. 그도 얼떨결에 답례를 했다. “Have a nice dead.”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이글어졌다. ‘Have a nice dead?’ 멋있게 죽으라고?

한국에서 처제가 미국 방문한 지 얼마 지나 경식 식구는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공원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연못에는 오리들이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때 연못가에서 놀던 아들이 오리들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닥. 닥. 엄마 저기 닥 예쁘지?” 오리를 보고 닭이라니 경식은 한심한 듯 아들 녀석에게 점잖게 타일렀다. “얘 저것은 닭이 아니라 오리야. 오리. 어째 닭과 오리를 구별 못하니.” 그러자 처제가 민망하듯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죄송해요. 그런데 오리가 영어로 Duck 아닌가요.” “Duck? 난 닭이라고 들었는데. 허 참.” 하필 닭과 닥이 발음이 같담.

어느 날 경식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던 중 그만 교통사고가 나버렸다. 네거리를 지나던 중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트럭에 받혔는데 정신을 잃어 버렸고 한참 후 비몽사몽 가운데 깨어나 보니 머리에는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아니 여기가 어디야?” “어마 당신 깨어났어? 어딘 어디예요 병원이지. 정말 큰 일 날 뻔 했어요.” 침대 곁에 앉아 있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정말 당신 죽을 뻔 했어요. 몸 어디 크게 부러진 데 없이 살아 난 것 정말 기적이에요.” 아내가 그의 손목을 지그시 잡았다.

“정말 다른데 이상 없어?” “머리가 조금 다쳤는데 의사 선생님이 더 정확한 정밀 검사해야 한대요. 혹시 뇌에 손상이 있나 없나를 알아 본대요.”

정밀 검사가 끝난 후 정신과 의사가 최종적으로 진찰을 했다. “언어 사용에 불편을 느끼시면 통역사를 부를까요?” “아니에요, 제가 다 알아듣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OK.” 정신과 의사는 차근차근 질문을 하였다. 질문을 마친 후 의사는 “Good luck”하며 경식의 어깨를 두드리며 병실을 나갔다.

경식은 의사와 영어로 대화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아침에 아내가 수심에 가득 차 경식에게 다가왔다. 안색이 무척 안 좋았다. “여보. 무슨 일이 있어?” 경식이 물었다. “여보. 이제 당신 큰 일 났어.” “아니 큰 일 나다니. 무슨 말이야?” “의사 선생님이 당신 정상이 아니래요. 정신에 이상이 있대요. 내일 정신 병원에 입원해야 한대요.” “아니 무슨 이야기야. 멀쩡한 사람보고 미쳤다니? 내가 왜 정신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거야.” “당신은 비정상이래요 의사 선생님 보고 머리통을 자르겠다고 했다면서요. 아니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왜 해요.”

머리를 자르라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문득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도 머리카락이 길어 이발을 해야겠다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해버린 것이다.

“I must cut my head.” 의사는 hair를 head로 들은 것이다 멀쩡한 머리를 잘라 버리겠다고 하였으니정신병자로 취급할 수밖에.

“영어를 모르면 통역사를 부르지. 당신 얼마나 영어 잘 한다고.” 경식은 영어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영어는 나의 원수.


윤명도 / 소설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