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 기사 한 꼭지에 돌이킬 수 없게 된 정치인생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 6화> '한인 정치' 물꼬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5>뒤늦게 주류언론의 지형을 깨닫다
기도 끝에 꿋꿋하게 공격에 맞서기로 결심
내가 만약 공화당원이 아니고 민주당원이었다면 나를 향해 LA타임스가 공격했을까. 나 스스로 골백번도 넘게 물었다.
‘큰 통에 들어있는 잉크를 상대로 이길 수 없다(You can not beat the barrel of ink)’는 말이 있다. 무한정 글을 쓸 수 있는 언론을 상대로 싸워 봤자 본전도 뽑지 못한다는 얘기다. 미국 주류언론 절대다수가 좌성향이 강하다.
특히 보수진영, 공화당원 사이에서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LA타임스는 '급진좌파 언론' 혹은 '안티 보수 언론'으로 통한다. 괜히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들 언론 사설은 민주당원들의 연설 내용과 싱크로율 100%에 가깝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 기사도 대단히 편향적이다. 지금은 언론의 편향성이 극에 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들 언론이 나에 대한 빌미를 찾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주류언론이 아시안 공화당원을 가만히 놓아둘 리 없을 것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공화당 선배들로부터 각별히 조심하라는 충고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TV 방송사 중에서는 CBS와 NBC를 조심하라” 등과 같은 조언이었다. 이들 방송국이 철저하게 민주당 편에 서 있다는 설명이었다.
솔직히 나는 무지했다. 당시 공화당 선배들이 왜 입만 열면 그렇게 언론 얘기를 자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던 사람이다. 한국에서 어렵게 자랐던 시절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언론들은 이름만 들어도 상당한 무게감을 줬다. 막연하지만 뭔가 격이 높고, 수준이 높은 느낌을 줬다. 최고 선진국인 미국은 언론도 당연히 최고겠지 생각했다.
그래서 선배 공화당 의원들의 조언을 새겨듣지 않았다. 나한테는 해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잔소리 같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한다. 당시 나는 매일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최초의 공화당 아시안 이민자 의원’ ‘최초의 한인 연방하원 의원’이라는 타이틀 구름 위에 붕붕 떠 있었다. 당선된 지 얼마 안 돼 기분이 들뜬 상태였다. 내가 손대면 모든 게 술술 풀릴 것 같았다.
기자들과도 좋게 지내면 기사가 좋게 나올 것으로 봤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미국 언론의 생태계와 편향성을 알아야 하는 것은 공화당 정치인으로서 기본이었다. 이민자 사업가였던 내가 이런 점을 너무 모르고 정치 무대에 뛰어들었다.
대다수 한국과 한인 언론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편향보도로 뒤덮인 주류언론이 공정하다고 많이 착각하고 있다. 제발 우파 언론과 대안 언론 등을 보고 공부하라고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는 한쪽 얘기만 듣고 보도하는 것이다. 그러니 많은 한국인과 한인 이민자가 미국의 절반만 알고 다른 절반은 모르고 살고 있다. 뉴욕타임스 보도 내용이나 오피니언이 신이 말한 것인 양 무조건 떠받드는 관습은 아주 잘못됐다.
언론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 말을 액면 그대로 기사화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 자기 의견을 넣어 기사를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특히, 치명적인 것은 앞뒤 맥락을 거두절미한 글이다. 한 번은 불우 학생들을 돕는 단체에 100달러를 기부하면서 “내가 부자라면 100달러가 아니라 1000달러를 기부하고 싶지만 안타깝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다음 날 신문에 “김 의원이 앞으로 1000달러씩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고 보도됐다. ‘내가 부자라면’이라고 말한 전제 부분은 빼버리고 1000달러를 기부하겠다는 말만 보도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 보도 뒤 여러 자선단체로부터 1000달러씩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기사를 쓴 기자에게 전화로 따졌더니 그 이튿날 신문에는 “김 의원이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발뺌했다”고 보도했다. 따지면 따질수록 나만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언론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수많은 정치인이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등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승소한 적이 거의 없다. 언론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고의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그런 기사를 썼다는 증거가 없으면 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고의로 썼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측근들은 내 정치인생도, 연방의회 활약상도 LA타임스 기자 한 번 잘못 만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형국이 됐다고 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미국의 거대 주류언론들은 진보 성향이 뚜렷했지만 한국의 대형 언론들은 보수 성향이 강했다는 점이다.
또 미국 언론들은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반면, 한국 언론들은 그래도 인정사정없이 공격하는 기사는 피하려는 노력이 역력히 보인다. 리처드 닉슨(공화)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은 기자들의 취재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은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이 사건을 백일하에 드러내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퓰리처상을 탔을 뿐만 아니라 단번에 유명인사에 백만장자가 됐다.
미국 주류언론은 인기주의로 쏠리는 경향이 크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언론들은 독자를 흥분시킬 수 있는 흥미진진한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사냥을 다니는 굶주린 늑대와 다르지 않게 됐다.
이제 막 의회 생활을 했는데 연방수사국(FBI) 조사를 받는 처지에 놓인 게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오랜만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동안 하나님을 잊고 살아온 나의 오만함을 용서해주세요.” 한참을 기도하고 나니 마음속에 평안함이 왔다.
기운을 차렸다. 나를 향한 공격에 꿋꿋하게 맞서기로 했다. 선거법을 잘 모르고 잘못한 게 있다면 나의 실수로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했다.
원용석 기자 won.yongsuk@koreadaily.com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