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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직업인'…100살 최고령 국립공원 레인저·랍스터 잡는 101세 어부

백세 시대가 되면서 은퇴 시기도 늦어지고 있다. ‘가능한 오래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이처럼 은퇴를 늦추는 데에는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100세의 고령에도 불구 어엿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100살 최고령 국립공원 레인저
베티 리드 소스킨 “우리 모두에게 열정 필요”


현재 100세로 국립공원 레인저(관리대원)인 여성이 앞으로도 일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3일 ABC방송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리치먼드 ‘로지 더 리베터(Rosie the Riveter) 제2차 세계대전 국내전선(Homefront) 국립역사공원’에서 일하는 레인저 베티 리드 소스킨(Betty Reid Soskin.사진)이 전날 100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레인저로 일하겠다면서 “열정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 모두에게 열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스킨은 1921년 9월 22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국립공원관리청은 소스킨을 소개하는 글에서 ‘민권운동가이자 음악가이면서 선구적인 사업가’였다고 설명했다.

그가 국립공원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2000년이다. 당시 주의원 현장대리인으로 일하며 ‘로지 더 리베터 국립역사공원’ 조성 관련 회의에 참석한 것이 계기였다. 로지 더 리베터는 2차 대전 때 남성들이 전장에 투입되자 대신 공장에서 일하며 군수물자를 생산한 여성을 상징한다.

이처럼 청춘을 받쳐 군수물자를 생산해 미국이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도록 뒷받침한 이들을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조성된 곳이 ‘로지 더 리베터 국립역사공원’이다. 흑인인 소스킨은 사회에 통용되는 로지 더 리베터 이야기가 ‘백인 여성의 경험’만을 반영했다는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에 공원에서 일하며 ‘전시 군수산업에서 일하면서 인종차별과도 맞서 싸워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전하기로 했다. 소스킨 자신도 1942년 공군에 고용됐으나 관리자가 백인으로 착각해 뽑았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그만둔 경험이 있다.

그는 2004년 정식 레인저가 됐다. 소스킨은 전국에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사다. 2013년 연방정부가 셧다운 됐을 때 당시도 최고령 레인저였던 소스킨을 많은 언론이 찾아왔고 그때 그가 “방문객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소망을 밝히면서 반향이 일었다.

2015년엔 백악관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에 초청받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근 리치먼드 교육 당국은 소스킨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서 한 중학교 교명을 ‘베티 리드 소스킨 중학교’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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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스터 잡는 101세 어부
버지니아 올리버, 78세 아들과 오전 3시 바다로


“평생 이 일을 해 왔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할 거예요.”

100세가 넘는 고령에도 배를 타고 랍스터 어획에 나서는 할머니의 사연이 화제다.

주류 언론에 따르면 대공황 이전인 1928년부터 랍스터를 잡는 일에 종사했던 버지니아 올리버(101.사진)는 지금까지도 메인주 록랜드시 해안에서 업을 이어가고 있다.

매년 5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랍스터를 잡는 시기가 되면 올리버와 78세 아들 막스는 오전 3시에 기상해 오후 10시에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하며 랍스터를 잡는다.

이들 모자는 15년 전까지는 사별한 남편 소유의 배였지만 이제 올리버 본인 배가 된 ‘버지니아’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올리버는 8세 때 랍스터를 잡는 어부였던 아버지를 따라서 처음 배에 탔으며, 남편과 결혼 후에도 부부가 함께 바다로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여자는 나뿐이었다”면서 “남편과 나는 날씨가 어떠하든지 일을 하러 나가곤 했다”고 회상했다.

올리버는 선상에서 랍스터의 크기·무게 등을 재고, 집게에 밴드를 묶는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크기가 작은 랍스터를 확인하면 배 밖으로 풀어주기도 한다.

본래 오른손잡이인 올리버는 몇 년 전 손목을 다친 이후로는 왼손에 장비를 들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키잡이 등을 맡은 막스는 “어머니의 체력과 직업의식은 정말 훌륭하다”면서 “때때로 나를 못 살게 굴 때도 있지만 어머니가 내 상사”라고 말했다.

인근에 사는 올리버의 지인인 웨인 그레이는 올리버가 2년 전 손가락을 랍스터의 집게에 집혀 7바늘을 꿰매야 했을 때조차 랍스터를 잡는 일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레이는 “의사가 올리버에게 ‘왜 랍스터를 잡는다고 밖에 나가느냐’고 책망하자 올리버가 ‘내가 원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회상했다.

올리버는 “이 일을 좋아하고, 바다와 함께 하는 일도 좋아한다”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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