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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사람은 변한다. 나 자신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영향을 받으니 차라리 나 자신은 변하는 것보다 ‘나이 든다’ 는 표현을 쓰고 싶다. 급변하는 모든 일들이 일상사에 섞였고 그 장단에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사는데 익숙하다가 가끔씩 어지럽다.

20년 전, 9·11 사태가 일어났을 적에 많이 흥분했었다. 경악과 분노에 안타까운 감정까지 모두 한꺼번에 내 속에 회오리 물살이 되어서 불면증에 시달렸다. 불안 발작 증상으로 어지럽다가 의식을 잃은 바람에 3번이나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신세를 졌다.

그때 몽고메리와 버밍햄의 전문의들을 찾아 여러 테스트를 받아도 내 장기의 어느 것도 삐걱거린 것이 없었다. 결국 내 감정상태가 일으킨 사고였다. 과도한 심리적 고통으로 불안장애를 가졌으니 그후부터 흥분하지 않으려고 주의하며 사는데 최근에는 사색하는 일에 많이 몰두한다.

오늘 옆집 메리의 친정어머니 장례식이 있었다. 원래 플로리다에 살던 여인은 남편을 잃자 딸네 가까이서 살려고 몽고메리로 이사왔다. 50대인 브라이언과 메리 부부와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 돕고 의지하는 이웃사촌이라 그들의 확대가족과도 친근하다.



그녀는 두 딸네를 오가다가 얼마전에 재혼해서 몽고메리 근교에 정착했다. 딸네에 들리면 멈춰서 뜰에서 일하던 나와 한참을 수다 떨었다. 나보다 네 살 위인 그녀가 대학생이 된 손자의 의젓함을 자랑하면 늦깎이 할머니가 된 나는 한창 재롱을 피우는 내 손자가 훗날 어떤 대학에 들어갈까? 상상했다. 세상사가 아니라 손주들에 관해서 우리가 나눈 대화는 늘 활기찼고 달콤했다.

지난 겨울 딸과 사위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려서 고통을 받을 적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녀갔다. 사람을 피하며 멀찍이 물러섰다가 정작 그녀가 아픈 줄은 몰랐다.

주말에 그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받았다. 하얀 국화와 노란 해바라기 꽃 한아름을 메리에게 안겨주며 “이제 당신도 나처럼 고아가 되었네” 하니 눈물을 글썽이던 메리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를 잃은 가슴에 세상의 어떤 말이 위로를 줄 수 있나. 고인의 명복을 빌고 가족의 위로를 위한 기도를 드렸다. 바이러스가 바꾼 사람살이는 잔인하다.

남편의 친구가 지금 병원에 있다. ICU에 들어간 지 한달이 지났다. 인위적인 코마 상태인 그가 딱해서 남편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를 위한 기도를 하며 안타까워 한다. 불안하고 조마조마해 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나도 가슴이 짠하다. 6피트 거구의 멀쩡하던 그가 현재 처한 상황에 우리는 어떤 말로 그의 아내를 위로할 지 몰라 당황스럽다. 그는 수의사다. “똑똑한 사람이 왜 백신주사를 맞지 않았을까?” 나의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백신주사를 맞고 안 맞고는 현재 우리가 아는 지인들 사이에 아주 민감한 주제다.

그래도 같은 퇴역군인과는 노골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며 주변에서 코비드19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안스러워 한다. 백신주사를 맞고도 코비드에 걸렸던 지인부부는 2주 격리를 마치고 가볍게 털고 일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각자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팬데믹 환경에서 전문인들의 조언을 따르는 현명함도 개인의 자유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한 일은 불안함을 숨긴 반가움이다. 월남에서 미군이 철수할 적에 배를 타고 월남을 탈출해서 미해군함에 구조되어 미국에 와서 정착한 여인과 최근에 만나 월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철수가 달랐던 상황을 이야기했다.

사춘기에 피난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그녀에게 베트남은 멀고 미국은 가깝다. 나와 그녀가 본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아프간난민들의 미국 정착을 돕겠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월남인들과 다른 시선으로 아프간난민을 보는 사람들이 많은 사실도 안타깝다. 9.11 사태가 바꾼 사회에서 이슬람 난민은 은연중에 두려움을 주나보다. 그들도 나와 똑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흐릿하다.

삶의 한 가운데서 사는 일은 여전히 도전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만사에 인간적인가 아닌가 하는 기본 자세를 가진다. 어떤 일에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에 침착하게 대처하고 싶다. 그리고 누구든 감싸안고 싶다.


영 그레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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