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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마음의 서재

자신만의 서재 갖기.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일이다. 서재를 꾸리고, 이름을 붙이고,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흠뻑 느끼는 방법도 없으리라.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으면 몸에서 책의 기운이 풍기고 문자의 향기가 묻어난다는 뜻이다.. 참 좋은 말이다. 아무렴,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이런 경지에 오르는 것을 마다할 이 있을까.

정약전과 정약용은 피를 나눈 형제이자 서로의 학문을 알아주는 둘도 없는 지기였다. 그러나 신유박해로 한 명은 흑산도로, 한 명은 강진으로 보내져 장장 20년에 가까운 유배를 견뎌내야 했다.

그런데 참으로 감동적인 것은, 비참한 운명에 좌절하며 그저 하루하루 연명할 법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삶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학문으로 세상을 이롭게 할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정약전에게 창대라는 소년은 물고기를 연구하면서 만난 둘도 없는 제자이자 고된 유배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준 벗이었다. 이런 창대와 함께 물고기 도감 <자산어보> 를 쓴 과정은 최근 영화로도 제작돼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정약용은 처음에는 실의에 빠져 지내다가 점차 희망을 품고,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당 겸 연구실 사의재를 열었다. 사의재(四宜齋)는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묵은 곳이다. 사의재는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네 가지를 올바로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산은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이 네 가지를 바로하도록 자신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언어)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할 것을 스스로 주문했다.

중국의 역대 황제 약 230여 명 중 유일하게 ‘천년에 한번 나옴직한 제왕’이란 뜻의 ‘천고일제’란 호칭을 얻은 황제가 있다. 청나라의 강희제(康熙帝)다. 중국의 역대 황제 중 재위기간이 61년으로 가장 길게 왕위를 유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단순히 오랫동안 천하를 통치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중국 지도자들조차 가장 본받고 싶어 하는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한 주인공이 된 것은 한 마디로 ‘피를 토할 정도로 노력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강희제는 후세 사람들에게 정진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조금도 태만하지 말라고 훈계했다. 그는 말했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을 훌륭한 덕이라 한다고 했으니 학자는 날마다 반드시 한 걸음 나아가야 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 강희제는 일생을 이렇게 스스로 격려했고, 직접 정무를 돌보는 데 있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질병, 3대 명절, 중대 변고 발생 시 외에는 거의 하루도 빠진 적이 없었다.

그는 만년에 인생을 회고하면서 감개무량하게 재위 61년을 이야기했다. “부지런히 애쓰며, 주의 깊고 신중했다. 조석으로 겨를이 없었고, 일찍이 조금도 느슨한 적이 없었으며, 수십 년을 하루같이 몸과 마음을 다했다.”

청나라 황자의 교육제도는 강희제 때 정해졌다. 황자와 황손은 6세 때부터 서재에서 공부했다. 황자들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6~7시까지 공부했다. 황자와 황손들이 공부하는 서재는 창춘원(暢春園)의 무일재(無逸齋)에 있었다. 서재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에서는 ‘안일’이라는 것이 없었다.

강희제는 ‘정훈격언(庭訓格言)’에서 밝혔다. “무릇 사람의 수신양성은 모두 평소의 신중함에 있다. 짐은 6월 대서(大暑)에 부채를 쓰지 않고, 관을 벗지 않는데, 이는 모두 평소에 스스로 방종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뜻이다. 무릇 수신양성은 평소의 일거일동에 나타나며, 일상의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나는 한여름인 6월의 찌는 듯한 날에도 부채를 부치지 않고, 모자를 벗지 않는데, 이는 내가 평소에 자신을 엄격하게 단속하며 방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로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에게나 서재가 있다. 작거나 크거나, 물리적이거나 아니거나. 특히 요즘, 서재는 일종의 로망이다. 유명인들의 책 목록이나 실재 서재를 보여주는 ‘OOO의 서재’. 평범한 우리는 그것에 때론 혹하거나 압도당한다. 아닌게 아니라 나도 서재를 갖고 싶다. 나도 저 책을 읽고 싶다. 지금 회자되는 많은 (물리적인) 서재들은 사회적 욕망의 산실에 가까운 듯 보인다. 가장의 사실(私室)임에도 굳이 ‘서재’라고 부른다.

서재라는 공간은 여전히 일상의 영역으로 편입되지 못한 채 생경한 느낌을 주지만, 독서와 사색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나아가 인생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면 서재 한 번쯤 만들어볼 만하지 않을까. 그러나 막상, 그런 공간을 정말로 갖기는 쉽지 않다. 다들 살기가 바빠서,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 서가를 채울 책이 충분치 않아서, 서재를 꾸릴 시간이 없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서재 만들기를 주저하거나, 막연한 동경의 대상으로 남겨두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영영 서재를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마음 곳곳에 심어둔 책들이 꽂힌 서재가 있다. 남의 서재에 휘둘려 읽을 책의 강박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읽은 책으로 마음의 서재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 번듯하지 않아도, 책이 몇 권 없어도 주인의 뜻이 묻어나고 책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면 책상 한 칸이라도 충분하지 않을까.

얼마 전 문득 깨달았다. 내겐 ‘앞으로 읽어야 할 수많은 책들의 목록’ 때문에 ‘이미 읽은 책들이 놓일 마음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잠시 새로운 책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놓고 오직 내가 읽은 책들로만 이루어진 작고 아름다운 마음의 도서관을 가꾸기로 했다. 작은 아파트에도 꼭 별실이 아니어도 찾아보면 공간은 나온다. 내 서재는 침실 한켠의 책상과 그 위에 놓여있는 낡은 PC와 몇 십 권의 책이 전부다. 공간은 초라하지만 호기있게 서재 이름은 강희제의 그것을 따서 무일재(無逸齋)로 정했다. ‘무일’은 안일에 빠지지 말고 자강불식(自强不息)하자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옛 선비들처럼 서재를 가꾸고, 서재의 이름을 짓고, 그 속에서 나를 키우는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새 세상사에 짓눌린 번뇌와 잡념이 저만치 물러간다. 책이 있어서 노년의 긴 밤이 두렵지 않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하고 현재의 나를 단속하며 내일의 나를 앞당겨보게 하는 책, 책은 나에게 편안한 조언자다.


김건흡 / MDC시니어센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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