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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으로 가는 다리 역할, 할 수 있는 레퍼토리 다 할 것”

지난해 ‘팬텀싱어’ 시즌3 첫 방송에서 ‘더 프레이어(The Prayer)’를 부르던 귀여운 청년의 아름다운 음성에 귀가 번쩍 트인 건 나만이 아닐 터다. 안드레아 보첼리와 셀린 디옹이 부른 원곡을 벨칸토와 팝 발성을 오가는 ‘1인 듀엣’으로 소화하며 나타난 테너 존노(30) 말이다.

19일 예술의전당에서 첫 독창회를 앞두고 있는 존노는 그후 1년을 딱 그 모습 그대로, 클래식과 크로스오버를 분주히 넘나들며 살아왔다. 크로스오버 그룹 라비던스의 데뷔앨범을 7월에 내며 8월에는 콘서트 투어를 했고, 얼마 전 ‘정명훈 & 원코리아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합창’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천년의 노래’에는 각각 솔리스트로 나섰다.

“클래식으로 가는 다리가 되고 싶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솔리스트로 서요. 클래식을 모르시는 팬분들도 많거든요. 제가 대단한 성악가는 아니지만, 저를 보러 왔다가 오히려 대가들의 소리를 듣고 클래식의 매력에 빠질 수도 있잖아요. 딱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서, 제가 할 수 있는 클래식 레퍼토리들은 다 하려고 해요.”

지난 7일 발매된 첫 솔로앨범은 클래식으로만 채워 선주문 2만장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NSQG’라는 제목이 마치 암호같다. ‘Noble Simplicity & Quiet Grandeur(고귀하며 단순하고, 고요하며 웅장한)’는 18세기 미술사학자 빙켈만이 고대 그리스 미술을 설명한 말인데, 존노의 음악철학이기도 하다. 단단한 대리석 재질이지만 천사의 날개를 달고 곧 날아갈 듯한 그리스 조각처럼, 고전적이되 무겁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달콤한 음성의 근원이 여기 있는 것 같다.

앨범 수록곡은 헨델의 오라토리오부터 모차르트 오페라, 현대 가곡까지 다양하다. 소위 ‘모차르트 테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드라마틱한 곡까지 넣은 건 “이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저만의 스타일로 클래식의 다양한 면들을 보여주고 싶어서”란다.

“제 인생의 주요 순간에 불렀던 노래들인데,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헨델의 아리아는 줄리어드 졸업연주회 때 불렀었는데, 바로크 음악이지만 ‘NSQG’에 딱 맞는 노래죠. 성경 이야기인데 하나님께 딸을 제물로 바쳐야 되는 장군이 복잡한 심정을 다 정리하고 단순하게 부르는 축복의 노래거든요. 모차르트 아리아는 ‘마술피리’ 중에서 덜 알려진 곡을 소개하고 싶어서 골랐고요. 토스티의 ‘이데알레’는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노래인데 제가 가곡을 들으며 눈물 흘린 적은 처음이라서, 감정 표현이 가장 잘 되는 곡이예요.”

줄리어드·예일대서 촉망받던 유망주
“옥구슬이네~.” 유튜브 촬영을 하다가 무릎을 쳤다. 구독자 신청곡 ‘지금 이 순간’을 난생 처음 불러본다는 그에게서 역시나 한끗 다른 아우라를 느끼고 있는데, 촬영팀에서 터져나온 감탄사 한마디가 그 실체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었다. 이 ‘옥구슬 발성’은 어떻게 얻어진 것일까.

“군대에서 탱크 시동을 걸 때 마음껏 발성연습을 하긴 했죠.(웃음) 발성이 완성된 건 아니고 계속 연구하고 있어요. 테크닉은 선생님께 배운 대로 하지만, 저만의 목소리를 찾고 싶어서 누구 발성을 따라한 적은 없습니다. 늘 친구들한테 들려주고, 피드백 받으면서 조금씩 찾아가고 있어요.”

사실 그와의 만남은 1년 여 만인데, 영 다른 사람 같았다. 경연 직후 라비던스 팀으로 만나 “크로스오버계의 BTS가 되겠다”던 씩씩한 모습은 간데없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한다는 건 평생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니. “제가 혼자서는 쫄보여서요.(웃음). 그때는 뭔가 해보겠다는 포부만 있었다면, 뭔가를 하고 있는 지금은 ‘뭐든지 당연하게 되는 게 아니구나, 감사한 일이구나’ 계속 느끼고 있거든요. 그게 달라진 것 같아요.”

그는 사슴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자꾸 “감사하다”고 했다. 팬텀싱어 출연 계기가 된 외할머니 얘기를 하면서도 그랬다. “할머니가 몇 년 전 돌아가셨는데, 제 공연을 보여드린 적이 없거든요. 늘 계시는 분이라 생각했어요. 싸주신 반찬이 너무 많아서 사양한 적이 있는데, 바로 다음날 넘어지셔서 회복 못하고 돌아가셨거든요. 너무 당연한 존재라 노래도 언젠가 들려드릴 수 있겠지 했던건데, 그게 당연하지 않더라고요. 성대결절을 겪으며 노래도 당연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됐고, 사람도 마찬가지란 걸 할머니를 통해 알게 됐죠.”

‘엄청난 커리어’는 아닐지 몰라도, 줄리어드와 예일대에서 유망주로 촉망받던 그다. 하지만 보장된 미래는 없었다. 세상의 모든 청년들처럼 미래가 불안했고, 열심히 기회를 찾다가 팬텀싱어를 만났다. “오페라 가수라는 직업이 정말 되기도 어렵고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는 현실을 점점 알아가던 때였어요. 열악한 환경이란 걸 알면서도,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며 닥치는 대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죠. 다른 청년들도 다들 그렇지 않나요. 미래가 불확실하니, 일단 뭐라도 하는 거죠.”

자신만의 목소리 찾기 계속
본격 오페라 무대에 대한 팬들의 요구도 빗발치지만, 한 프로덕션에서 장기간 투자해야 하는 대형 오페라는 일정 조율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대신 크고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소통할 생각이란다. 창작곡에 대한 욕심도 있고, 직접 작곡도 배우고 있다는 그는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퀸시 존스를 꼽았다. 항상 도전하고 발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라비던스가 그분 노래를 준비할 때 다큐멘터리를 봤거든요. 처음엔 그냥 재즈뮤지션이었지만 파리에 유학 가서 오케스트라를 공부하고, 재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프랭크 시나트라를 만나 더 대중적인 재즈를 하다가 마이클 잭슨을 발굴하고, 나중엔 힙합레이블까지 만들었죠. 점점 발전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어요. 저도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늘 도전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년 초 발매한다는 크로스오버 솔로 앨범은 다소 의외다. 팀으로는 크로스오버, 개인으로는 클래식 활동을 할 거라는 뻔한 예상과 달리, 혼자서도 다양한 음악을 하고 싶단다. “라비던스는 가족이지만, 그룹이다 보니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못할 때가 있거든요.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려고 힙합, 시티팝 계열의 곡도 준비 중이예요. 정말 많은 걸 크로스오버 해보려구요.”

뜻밖인건 또 있다. 한창 바쁜 지금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전도사가 됐다. 영향력이 있을 때 찬양사역을 하기 위해서란다. 좀처럼 ‘당연하지 않은’ 길만 가는 그의 행보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분명한 건 늘 ‘당연하지 않은’ 곳에서 그를 만나게 될 거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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