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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끝이 보인다고 끝은 아니다. 끝이 나야 끝장이다. 끝은 마지막(End) 마무리 (Finish) 닫는다(Close)로 시간이나 공간, 사물에서 마지막 한계가 되는 곳이다. 인생의 끝은 죽음이다. 산다는 것은 끝을 보는 게 아니라 끝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 어둔 터널 속을 헤매다가 빛이 보인다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퇴로가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스스로 체면을 걸며 낙담하고 방심하다 코 다치고,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일이 한 두 번인가.

끝까지 가는 데는 끝을 바라보는 시야와 용기가 필요하다. 나이 들면, 태평양이 보이는 언덕에 그림 같은 화실 짓고 멀리서나마 그리운 조국 바라보며 화가의 꿈을 키우겠다는 내 계획은 한 방에 날아갔다. 수년 동안 열심히 사력을 다해 준비한 샌디에이고 여정은 타인에 의해 어처구니없이 깨졌다. 30년 동안 몸과 마음 바쳐 키운 화랑 건물 두 곳 정리하며 고객들에게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오하이오여!’ 작별 인사를 수십번 했다. ‘중서부 내 인생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로 내 장년을 접을 마지막 장을 처절하게 기록했다.

근데 왠 일! 집을 사기로 계약한 사람이 2시간 전에 펑크를 냈다. 타이틀 회사에서 클로징 다큐먼트 받고 모든 가구와 화랑 오픈 할 작품을 샌디에이고로 보낸 뒤였다. 날벼락이 떨어져 눈앞이 캄캄하다 못해 칡흑 같은 어둠이 앞을 가로 막았다. 내 인생에 이토록 진퇴양난에 빠져 허우적거린 적이 없었다. 결단력 있다는 내 자부심이 휴지로 나뒹굴었다. 집에는 물 마실 컵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변호사 지시대로 서류에 사인하고 가방 두 개 들고 탑승했다.

각설하고, 결말이 좋으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로 극은 대반전을 이룩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다시 집 팔기가 어려운 상황이고 새로운 곳에서 사업 시작 하기도 힘들어 꿈같은 내 계획은 도루묵! 본가로 귀환, 정착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뒤로 자빠져 코 깨져도 정신 똑바로 차리면 살아남는다. 터널의 끝이 안 보여도 운전대 꼭 잡고 앞만 보고 천천히 조심해서 달리면 어딘가에 꼭 도착한다.

올해부터 부동산 값이 상승해 그 때 안 팔린 게 오히려 다행! 중서부 대평원에 태평양 대신 연못 보이는 곳에 초가삼간 짓고 화실 겸 귀향살이 둥지를 마련했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목민심서를 비롯해 232권의 저서와 260에 달하는 문집을 대부분 집필했다. 인생의 암흑기를 보냈지만 조선왕조의 사회현실을 반성하고 개혁안을 정리해 실학적 학문을 완성시키는 기회가 됐다.

어디서 사느냐 보다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사느냐가 생의 마지막을 완성한다. ‘내 안의 오랜 꿈을 이루어주는 것.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조금 쑥스럽더라도 완전히 다른 나 자신이 되어보는 것.(중략) 글쓰기만으로 없던 집이 생기고, 잃어버린 사랑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글을 씀으로써 여전히 살아있는 나 자신과 만날 수 있습니다.’-베스트셀러 작가 정여울의 ‘끝까지 쓰는 용기’ 중에서
누가 끝을 끝이라 말할 수 있을까. 끝은 생의 고비마다 수없이 나타난다. 앞을 가로 막고 숨통을 조이게 하고 어둠의 장막을 치며 사지를 붙들어 매고 죽음과 사투를 벌리며 터널 속에 내일을 가둔다.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타협하지 않는 꿈, 끝까지 가는 용기가 끝이 안 보이는 끝을 향해 달리게 한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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