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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문화사대주의를 극복하는 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세상만사가 모두 그렇다. 문화 예술이나 정신세계에서는 기준이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어 미인의 기준을 살펴보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미인의 기준을 미스코리아 식의 쭉쭉빵빵으로 정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열등 인간으로 전락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아담하고 오통통 복스러운 우리의 미인이 왜 어째서 무슨 까닭으로 서양식 늘씬쭉쭉빵빵을 부러워하며 주눅 들어야 하는가? 왜 코 높이고 노랑머리로 물들여야 하는가? 아무도 속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데, 세상은 그런 기준으로 돌아간다.

역사를 보면 미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수시로 변해왔다.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중국 역사상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라는 4대 미녀가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저런 중국 식의 과장된 이야기와 평가도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서시는 황홀하게 아름다워서 그녀가 물가를 거닐면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속으로 가라앉을 정도였고, 양귀비의 용모는 모든 꽃들이 수줍어할 만큼 아름다웠다는 식이다.

이런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춘추전국시대의 미녀 서시는 하늘하늘 말라깽이 미인이고, 당나라의 양귀비는 통통한 글래머 미인이다. 역사책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고, 그림도 그런 식으로 전해 온다. 시대에 따라 미인의 기준이 달랐다는 이야기다.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BB, CC, MM이 미인의 기준으로 시대를 풍미했는데, 오드리 헵번이라는 가냘픈 미인이 등장하여 판도를 뒤집었다. 튀기라는 말라깽이 모델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참고로 BB는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 CC는 이탈리아 미녀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 MM은 할리우드의 마릴린 몬로)

한국에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름달처럼 복스러운 얼굴이 맏며느리 감으로 인기였는데, 서양물이 들어오면서 싹 바뀌었다. 지금은 어떤 여성을 미인으로 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다이어트 쭉쭉빵빵이 대세인 것으로 보인다.

자, 여기까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므로 이해가 쉽다. 하지만, 정신적인 문제가 되면 사뭇 복잡하고 골치 아파진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모든 기준을 서양 것에 맞춰놓고 발전해왔다 현대화가 곧 서구화였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구미선진국 운운하며 서양 따라하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한 결과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정치적 민주화도 어느 정도는 이루었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정신세계는 어떨까? 문화적 정체성은 또 어떨까? 코흘리개 때부터 서양식 교육을 받고, 서양 음악을 우리 것인 줄만 알고 열심히 부르고, 느닷없는 서양철학 우러러 받들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서양에서 들어온 추상화를 그리며 자랐고, 지금은 미국 땅에서 살고 있는 나는 과연 한국사람인가? 어느 정도나 한국사람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문화사대주의에 잔뜩 물든 먹물이라는 부끄러움이 크다.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기준을 다시 세워 바로잡고 싶다.

지금 세계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서양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한국사람이 아니라, 서양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한국만의 정신세계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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