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구음시나위
‘구음시나위’를 처음 접한 때는 30년 전쯤으로 생각된다. 국악을 좋아하기는 하였으나 그렇게 자주 듣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무당 살풀이 가락을 들었을 때 느껴지는 귀기(鬼氣)에는 형언할 수 없는 몸서리에 휘감겼다. 과거 김소희, 박병천 등 몇명의 명창들의 소리도 좋았지만, 현재 72세로 아직도 활동이 여전하기는 하나 한창 나이인 40줄 때의 안숙선씨의 구음은 듣는 모든 이에게 가슴이 저리는 “넋의 눈물”을 아니 느낄 수 없다. 구음(口音)은 뜻 그대로 입 소리다. 무슨 가사 하나 없이 “아” 한마디로 15분여 가량을 슬픈 살풀이 음 고저로 시나위를 한다.어렸을 적 서울에는 선바위를 중심으로 인왕산 자락에 무당들이 많이 살아 굿거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경기 지방의 특징은 주술 같은 소리를 지르며 작두를 잘 탔다. 그래서 꽤나 동네가 떠나가게 요란하였는데, 구음시나위는 이러한 무당 굿을 음률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도 학창 시절에는 인왕산 굿을 꽤나 잘하여 한때 인기가 많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구음시나위는 우선 악단이 있어야 할만큼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 등 변화 무쌍한 박자에 능통해야 하며 악기들을 구음으로 리드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안숙선 명창 외에는 이를 잘 부르는 진짜 무당 같은 국악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재작년 한국에서는 안숙선 명창이 4시간이 넘는 판소리 ‘수궁가’를 국립극장에서 송년맞이로 완창을 하였다. 안숙선씨는 2010년부터 매해 송년이 되면 판소리 완창을 하는데 이날 마지막 십년이라는 대장정을 마무리하였다. 특히 판소리 완창은 점심을 청중과 같이 먹어 가면서 하는 8시간 짜리도 있는데 판소리 다섯마당 이라 함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흥보가를 말한다. 이 다섯 마당을 완주한 명창은 안숙선이 유일하며, 40대 중반 나이에 일찍이 가야금 산조와 병창의 기능을 가져 인간문화재로 지정을 받았다. 이후 세계 무대에서 공연을 하여 프랑스에서는 천상의 소리라 하여 프랑스 문예 공로훈장을 받았으며, 또한 영국에서는 “영국에 세익스피어가 있다면 한국에는 안숙선이 있다”고 할 정도로 세계를 넘나든 국보적 존재 가치를 가졌다.
안숙선 명창은 오래 전 2005년 고려대학교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딸 최영훈;과 함께 공연을 하였는데 본인이 이때 마침 참석하여 같이 식사를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딸을 왜 판소리를 안 가르치고 거문고 연주가로 길렀느냐는 질문에 “몸이 악기인데 몸 관리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일부러 거문고를 시켰다. 거문고는 산조 한번 타면 1시간 정도 타면 되는데 판소리는 7시간 혹은 8시간 소리를 내 질러야 하기 때문에 힘이 너무 든다”며 자신과는 다른 분야에서 성공하게 하려는 어미의 정을 내 비추었다.
안숙선 명창은 그의 고향 남원시에서 그녀의 인생을 기록한 국악 전시관을 광한루 근처에 작년에 설립하였는데, 그의 작은 체구에서 울어 나오는 소리는 깊이 있는 중저음이나 고성으로 올라 갈 때는 윤활적인 굵은 창법이 특이하다. 구음시나위는 정선 아리랑과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슬픈 가락이다. [[email protected]]
한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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