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In] 부도칸이 부러운 이유
커뮤니티는 알고 있었다.타운은 말라갔다. 이민자는 줄어들고 젊은이들은 커뮤니티에 관심을 잃었다. 모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해진 3ㆍ4세들은 타운에 등을 돌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후죽순 난개발이 시작됐다. 토박이 주민들이 쫓겨나고 동네 상점들도 밀려났다. 정체성을 잃은 타운을 여행객들은 외면했다.
2000년대 말 LA 리틀도쿄는 멸종 위기를 직시했다. 절박함으로 커뮤니티 재건에 매달린지 10여 년이 지난 올해 6월 리틀도쿄에서 부러운 소식이 들렸다.
'부도칸(Budokan.무도관)'이 문을 열었다. 체육관 겸 커뮤니티 센터인 부도칸은 로스앤젤레스 스트리트 선상 2가와 3가 사이 3만9000스퀘어피트 부지에 2층으로 지어졌다. 3500만달러라는 큰 돈을 모아 2017년 8월 착공해 3년만인 지난해 6월 완공했다.
팬데믹으로 완공식을 1년 연기하고도 끝내 열지 못했지만 부도칸의 개관은 리틀도쿄에 역사적인 사건이다.
부도칸은 리틀도쿄가 1970년대 중반부터 추진해온 반세기 숙원사업이다. 일본을 상징하는 도쿄의 대형 경기장이자 공연장인 '닛폰부도칸'을 LA에 옮겨 짓자는 의도였다. 계획은 좋았지만 예산은 부족했고 부지도 없었다. 무엇보다 커뮤니티의 공감대를 얻지 못해 중단됐다.
그러던 2011년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LA시정부 소유 주차장이었던 현재 부지를 무상으로 임대받으면서 프로젝트는 되살아났다.
여기까지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현재 LA한인타운에 추진되고 있는 한미박물관과 무척이나 닮았다. 한미박물관도 30년 된 숙원사업이다. 부지도 부도칸처럼 시정부 소유 주차장(6가와 버몬트 애비뉴)을 거의 무상 임대받았다. 3200만 달러인 건축 예산도 부도칸과 비슷하다.
여러모로 닮은 두 숙원사업을 놓고 리틀도쿄는 꿈을 현실화했지만 우린 아직 착공조차 못했다.
차이점을 꼬집으려 한다.
먼저 부도칸은 커뮤니티의 미래 존속에 초점을 둔 큰 그림의 산물이다. 멸종 위기에 처했던 리틀도쿄는 2011년 탈출구를 찾기 위해 범커뮤니티 협의체를 구성했다. 그리고 3년간 커뮤니티 전체 의견을 수렴해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내놨다. 100년 앞을 내다본 커뮤니티 부활 프로젝트인 '지속가능한 리틀도쿄(Sustainable Little TokyoㆍSLT)'가 그 이름이다. SLT의 핵심 사업이 부도칸 건립 프로젝트였다.
무엇보다 부도칸은 '함께' 지었다. 복지 비영리단체 리틀도쿄서비스센터(LTSC)가 주도한 SLT협의체에는 일미상공회의소 일미문화커뮤니티센터(JACCC) 일미박물관 등 30여 개 일본계 대표단체를 비롯해 사찰과 교회 등 종교기관 식당 동네빵집 커피점 마켓까지 참여했다. "자식들이 맘껏 뛸 수 있는 공간 하나 남겨주지 못해 되겠는가"는 호소는 공감대를 얻었다.
부도칸 건립에 남은 숙제였던 3500만달러 예산 마련에 모두가 뛰었다. 재력가들도 앞다퉈 기부했다. 부도칸의 정식 명칭은 '테라사키 부도칸'이다. 장기 조직 유형 검사법을 발명한 고 폴 테라사키 전 UCLA 교수 가족이 350만달러 거액을 기부해 그 이름을 붙였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힘을 보탰다. 초등학생들이 볼링 토너먼트를 열어 9000달러를 모아 전달했다. 노인아파트에 50년 넘게 살다가 본국으로 귀국한 할머니는 한 푼 두 푼 모았던 장롱속 1000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주LA일본총영사관도 관저 만찬 행사를 열어 적극 지원했다.
부도칸은 우리에게 빠진 그 중요한 조각들을 홈페이지 머리글에 얄밉도록 분명하게 적었다. '테라사키 부도칸' 이름 뒤에 굳이 넣은 짧은 문장 하나는 이렇다.
'a community-driven project'. 커뮤니티가 주도한 프로젝트라는 뜻이다.
'Korean American Museum'의 홈페이지 머리글 뒤에는 어떤 문장이 적힐지 궁금하다. 분명한 건 지금까지 박물관의 행보만 본다면 머리글에 '커뮤니티 주도'를 넣을 수 없다. 소수의 이사들만 모여 설계안을 6차례나 주물렀다. 그동안 한차례도 공청회를 열지 않았고 운영 내역도 공개하지 않았다. 수차례 지적에도 문은 꽁꽁 닫혀있다.
커뮤니티는 박물관을 모른다.
정구현 선임기자·부장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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