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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포츠머스와 카불

러·일 전쟁 막바지이던 1905년 8월 5일, 루스벨트 대통령의 여름 백악관 사가모어 힐 앞바다에 요트 메이플라워가 닻을 올렸다. 선상 리셉션에 의자는 없었다. 자리 배치 고민을 접고 건배를 제의한 루스벨트는 조속한 합의를 채근했다. 러·일 대표 세르게이 비테와 고무라 주타로를 향해서였다.

일행은 군항 포츠머스로 향했고 꼭 한 달 만에 강화조약이 체결됐다. 대한제국 감독권은 일본에 넘어갔다. 중재자 루스벨트는 미국 국익에 미칠 영향에 골몰했다.

워싱턴에 대한제국공사관이 개설된 것은 그보다 17년 앞선 1888년이었다. 포츠머스와는 790㎞ 거리다. 당시로선 거금인 2만5000달러를 주고 공관도 마련했다. 그러나 포츠머스 조약 두 달 만에 일본의 외교권 강탈로 문을 닫았다. 공관은 단돈 5달러에 빼앗겼다. 냉혹한 국제 현실과 자강 없는 외세 의존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게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탈레반의 카불 재장악을 지켜보며 “미국 국익이 없는 곳에 머물며 싸우는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도자는 국외로 도피하고 군은 싸우려 하지 않았다”고 아프간을 성토했다. 한마디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는 게 미군 철수 논리에 다름 아니다. 116년 전 루스벨트의 거간 계산법과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무기 하나 변변히 못 챙기고 빠져나간 미국의 빈자리는 불확실성으로 채워졌다. 탈레반과 극단주의 무장 분파 하카니 네트워크 간 권력 다툼이 표면화하고 있다. 저항군 거점 판지시르는 내전의 살아 있는 불씨다. 알카에다는 호시탐탐 재건을 노린다. 경제적 기반의 붕괴와 여성 인권의 위기는 불안을 가중한다.

당선 일성으로 “미국이 돌아왔다”며 동맹 제일주의를 치켜든 바이든 대통령은 스텝이 제대로 꼬였다. “대만과 한국, 유럽은 아프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반중 동맹에 행여 차질이 생길까 봐 진땀을 흘렸다.

유럽의 트라우마는 심상치 않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라크로 날아가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하든 프랑스군은 주둔하겠다”고 공언했다. 독자 유럽군 창설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려 “한국은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미국을 사랑할 수 있어야, 우리 국익이 돼야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이수혁 주미대사의 지난해 국정감사 답변은 새삼 시사점을 준다. 한미동맹의 의미를 되짚고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대한제국공사관은 3년 전 복원됐다. 코로나 탓에 관람이 제한됐는데 내달부터는 차츰 풀린다고 한다. 비운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산 교육의 현장이기에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임종주 / 워싱턴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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